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穢德先生傳 - 朴趾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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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덕 선생전(穢德先生傳)
 
 선귤자(蟬橘子) <선귤자(蟬橘子) : 이덕무(李德懋 : 1741~1793)의 별호. 조선 정조 때의 학자로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菴)이다. 문장과 글씨, 그림에 능했고 학식도 높았지만 서출(庶出)이기 때문에 높은 관직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는 연암과는 매우 절친한 사이인데, 선귤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그의 서실(書室)이 매미껍질이나 귤껍질과 같이 협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에게 벗이 있어 예덕 선생(穢德先生) <예덕 선생(穢德先生) : 더러운 것으로부터 덕을 쌓아가는 사람. 반고(班固)의 《후한서(後漢書)》‘동방삭전(東方朔傳)’ 중 ‘正諫似直 穢德似隱’이란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이라 불리었는데 종본탑(宗本塔) <종본탑 : 서울에 있었던 탑.> 동쪽에 살았다.
그는 매일 마을의 똥을 지고 다니며 그것으로 직업을 삼았다. 마을에서는 그를 엄 항수(嚴行首)라고 불렀는데, 항수(行首)는 역부(役夫) <역부(役夫) :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중에서 늙은이를 칭하는 말이고 엄(嚴)은 그의 성(姓)이었다.
 자목(子牧) <자목(子牧) : 선귤자의 제자로서, 그 이름을 살펴보면 소나 말을 돌보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이 선귤자에게 묻기를,
 “일전에 선생님으로부터 벗에 대하여 듣기를 ‘벗은 같이 살지 않는 마누라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다.’라고 했는데, 벗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세상의 유명한 선비와 벼슬아치들이 선생님을 따르기 원했지만, 천박한 자가 많아 선생님께서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엄 항수는 마을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고 역부와 같은 하층 계급으로 하는 짓이 치욕스러운데도 선생님께서는 그 덕을 극히 칭송하여 ‘선생(先生)’이라 부르시고 이같이 친교를 맺어 벗으로 청하려 하시니, 제자는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겨 문하(門下)에서 떠날까 합니다.”
 선귤자는 웃으며 말하였다.
 “가만 있거라. 내가 벗에 대하여 말해 주마. 널리 알려진 속담에 이르기를 ‘의원이 제 병 못 고치고, 무당이 제 춤 못 춘다.’라고 했단다. 사람은 누구나 그 잘하는 바가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어리석게도 허물만을 들추려 하지. 그러나 부질없는 칭찬은 아첨이라 할 수 있으니 의미가 없고, 단점만 말하는 것은 헐뜯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정이 없는 것일 게야.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핵심에서 벗어난 곳을 어슬렁거리다가 비로소 크게 책망해야 하지. 그러면 그는 자신의 꺼리는 곳을 직접 지적받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화내지는 않을 게야. 또한 우연히 그의 잘하는 것에 이르면 어떤 물건의 감춰진 부분을 집어내듯이 감동이 마음속 깊이 와 닿을 것이니, 이것은 마치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도 같은 법이야. 가려운 곳을 긁는 데도 도(道)가 있단다. 등은 긁되 겨드랑이에 가까이 가서는 안되고 가슴을 긁되 목까지는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법이니, 사람 사이의 교류도 마찬가지겠지. 그리하여 중요하지 않은 곳에서 이야기가 그친다면 아름다운 것들이 스스로 돌아올 것이니, 마침내 그는 ‘나를 진정 아는 친구로다.’라고 하겠지. 이와 같이 벗을 사귀면 되는 것이란다.”
 자목이 귀를 막고 달아나려 하며,
 “이것은 선생님께서 시정배(市井輩)나 머슴들의 행세를 가르치는 것뿐입니다.”
라고 말했다. 선귤자가 타이르기를,
 “그렇다면 네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과연 이것에 있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 무릇 시정잡배가 사귀는 것은 이익으로 하고 안면(顔面)으로 사귀는 것은 아첨으로 한단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세 번만 요청하면 틈나지 않는 사이가 없고, 아무리 오래된 원수라도 세 번만 이익을 준다면 친해지지 않을 수 없지. 무릇 이익으로 하는 사귐은 계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 하는 사귐도 오래 가지 않는 법이야. 무릇 큰 사귐은 얼굴에 있지 않고 훌륭한 벗은 지나친 친절이 필요없단다. 단지 마음으로 사귀고 덕으로 벗을 하니 이것이 바로 도의(道義)에 맞는 사귐이지. 그래서 위로는 천고(千古)의 사람을 사귀더라도 멀게 느껴지지 않으며, 만 리를 떨어져 살아도 격의(隔意)가 없는 것이야. 저 엄 항수라는 사람은 일찍이 나와 알고 지내기를 애써 구하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칭찬하는 마음이 간절하구나. 그 먹는 것은 느릿느릿하고, 그 행동은 무엇인가를 망설이는 듯하며, 조는 모습은 정신이 없는 듯하고, 웃는 소리는 낄낄거리며, 그의 사는 곳은 어리석게도 흙으로 벽을 쌓고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집 모서리에 구멍을 내었으니, 들어갈 때는 새우등이요 잠잘 때에는 개주둥이 같은 꼴이지. 그래도 아침이면 즐겁게 일어나 삼태기를 메고 마을로 들어가 뒷간을 쳐서 나르는데, 구월에 비와 서리가 내리고 시월에 얇은 얼음이 얼면 뒷간의 남은 찌꺼기와 외양간의 말똥·소똥, 홰 <홰 : 닭이 앉도록 걸쳐 놓은 나무.>밑의 닭똥·개똥·거위똥과 입희령(笠豨笭) <입희령(笠豨笭) : 돼지똥.>·좌반룡(左盤龍) <좌반룡(左盤龍) : 사람똥.>·완월사(琓月砂) <완월사(琓月砂) : 닭똥.>·백정향(白丁香) <백정향(白丁香) : 닭똥.> 등을 모으기를 주옥같이 여긴단다. 하지만 이익을 구하되 청렴함에 손상을 입지 않고, 이익을 혼자 다 갖지만 의로움에는 해를 입지 않으며, 많은 것을 탐내어 얻으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염치없다고 말하지 않지. 그는 가끔 손바닥에 침을 뱉어 휘두르는데 경쇠 <경쇠 : 옛날의 타악기. 틀에 옥을 달아 틀망치로 치는 것.>처럼 굽은 허리는 새의 부리처럼 생겼구나. 비록 문장(文章)의 아름다움도 그가 뜻을 두는 것이 아니고, 종고(鐘鼓) <종고(鐘鼓)는 종과 북을 가리킴. 즉, 종고의 즐거움이라 하면 음악으로 인한 즐거움을 뜻한다.>의 즐거움이라도 돌보지 않지. 무릇 부귀란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원하지만, 원한다고 모두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논어(論語)》‘이인편(里仁篇)’의 인용. 원문을 보면, ‘부유한 것과 귀한 것은 사람마다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니라면 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다. 그는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는게야. 칭찬을 들어도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헐뜯어도 욕되게 생각하지 않아. 왕십리의 배추, 살곶이다리 <살곶이다리 : 전곶교(箭串橋).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다리 이름.>의 무, 석교(石郊)의 가지·오이·수박·호박과 연희궁(延禧宮) <연희궁(延禧宮) : 현재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궁궐 이름. 정종(定宗)이 동생 태종(太宗)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으로 기거했던 궁이다.>의 고추·마늘·부추·파·염교 <염교 :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 파와 비슷하며 뿌리는 식용으로 쓴다.>와 청파동의 물미나리, 이태인(利泰仁) <이태인(利泰仁) : 지금의 이태원.>의 토란 등을 심는 밭들은 모두 상(上)에 상(上)을 사용하되 모두 엄 항수의 똥을 사용하여 기름지고, 살찌고, 평평하고, 풍부해서 일년에 육천 냥이나 벌어들인단다. 그러나 엄 항수는 아침밥 한 그릇에 만족해 하고 저녁밥 한 그릇에도 만족해하는구나. 사람들이 고기를 권하면 사양하면서 대답하는 말이 ‘목구멍만 지나면 채소나 고기나 배부르기는 마찬가진데 맛을 따져 무엇하오.’라고 하며, 새 옷을 권하면 또 사양하기를 ‘소매가 넓은 옷은 몸에 맞지 않고 옷이 새 것이면 똥을 지고 길에 나설 수가 없소이다.’라고 한단다. 해마다 설날이면 아침 일찍 갓을 쓰고 띠를 매고 옷과 신발을 갖춘 후 이웃에 다니며 두루 인사를 하고, 돌아와서는 다시 헌 옷을 입고 삼태기를 메고 동네 안으로 들어가지. 엄 항수와 같은 사람을 일러, 더러운 곳에 덕이 있고 세상에 숨어 사는 큰 인물이라 하지 않을소냐. 옛 글에, ‘바탕이 부귀한 사람은 부귀를 행하고, 바탕이 빈천(貧賤)한 사람은 빈천(貧賤)을 행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무릇 바탕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란다. 또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니, 진실로 타고난 운명이 다르구나.’라고 했으니, 운명이란 곧 분수를 말함이야. 무릇 조물주가 만백성을 창조할 때 각기 그 분수를 정해 놓았고 바탕을 정해 놓았는데 그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느냐. 새우젓을 먹을 때는 계란이 생각나고 칡옷을 입을 때는 모시옷이 부러운 법이지. 세상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큰 난리가 일어나는 법이니, 검수(黔首) <검수(黔首) : 백성을 뜻한다. 갓을 쓰지 않아 검은 머리가 보인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가 토지를 빼앗기면 밭이랑이 황폐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진승(陳勝) <진승(陣勝) : 중국 진(秦)나라 말기의 군웅(群雄)의 한 사람. 진나라의 폭정에 항거하여 오광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초왕(楚王)이 되었지만 부하인 장가(莊賈)에게 살해되었다.>·오광(吳廣) <오광(吳廣) : 중국 진나라 말기의 장군. 진승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진승은 왕이 되고 자신은 가왕(假王)이 되었다가 후에 부하에게 살해되었다.>·항적(項籍) <항적(項籍) : 항우(項羽). B.C.207년에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초왕(楚王)이 되었으나 한왕(漢王) 유방(劉邦)과의 싸움에서 패해 오강(烏江)에서 자결하였다.>의 무리가 그 뜻을 어찌 호미나 곰방메 <곰방메 : 흙을 고르는 데 쓰는 농구.>에 두고 편안함을 구하겠느냐.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짊어진 자가 수레를 탄다면 도적을 만날 것이다. 《역경(易經)》에 나오는 구절. 《역경》에 대한 해설서인 《십익(十翼)》중 ‘계사전(繫辭傳)’을 보면, 공자(孔子)는 이 구절을 ‘등에 짐을 지는 것은 소인의 일이요, 말을 탄다는 것은 군자의 기구(器具)이다. 소인이 군자의 기구를 타면 도적은 이것을 약탈하려 한다. 윗사람이 게으르고 아랫사람이 횡포하면 도적은 이것을 치려고 한다. 간수함을 게을리하면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이요, 얼굴 화장을 난잡하게 하면 음탕한 짓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해설했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말함이지.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비록 온갖 봉록을 얻을지라도 그것은 깨끗한 것이 아니고, 노력하지 않고 재물을 얻는다면 비록 소봉(素封)과 같은 부자가 되었더라도 그 이름이 더럽혀질 것이야. 그러므로 사람이 죽었을 때 구슬과 옥을 입에 넣는 것은 그 깨끗함을 밝히려는 것이다. 하기야 엄 항수는 똥과 거름을 져서 벌어 먹으니, 지극히 깨끗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의 음식을 취하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운 바가 있으며, 그의 행색이 비록 비루하나 그가 의로움을 지키는 것은 조금도 굽힘이 없어 그 뜻을 따진다면 비록 온갖 것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야.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깨끗하다는 자 중에는 깨끗하지 않은 자가 많고, 더럽다는 자 중에서도 더럽지 않은 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래서 나는 밥을 먹을 때도 반찬이 너무 없어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생각이 엄 항수에 이르면 견디지 못할 것이 없게 되지. 그러므로 누구라도 도적질할 마음이 없는 자라면 엄 항수의 행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테고, 그것을 확대한다면 성인(聖人)의 경지에도 이를 수 있을 게야. 무릇 선비라면 가난이 얼굴에 나타나면 수치스러운 일이요 이미 뜻을 이루었더라도 온몸에 그것을 나타낸다면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니, 그들을 엄 항수에 비추어 본다면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가 드물 테지. 그런 이유로 나는 엄 항수에 대해여 스승이랄 부를지언정 감히 벗이라고는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나는 엄 항수에 대하여 감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호(號)를 부르기를 ‘예덕 선생(穢德先生)’이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연암외집·방경각외전―

♠작품 해설
 ‘예덕 선생전(穢德先生傳)’은 연암의 초기작 ‘구전’ 중의 두 번째 작품으로 1754년 전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비록 선귤자(蟬橘子)와 그의 제자 자목(子牧) 사이의 대화를 골격으로 하고 있지만 엄 항수(嚴行首)라는 역부에 대한 전기적(傳記的)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글은 연암이 ‘자서(自序)’에서 밝힌 것처럼 구복(口腹)으로 행실을 더럽히는 선비들을 경계하며, 똥을 나르는 행적은 더러우나 그 입은 지극히 깨끗한 예덕 선생에 대한 기록이다. 앞서의 ‘마장전’에서는 극도로 부패해진 ‘군자의 교류’에 대해 노골적으로 풍자한 반면, 이 글에서는 얼굴로 사귀는 것을 지양하고 ‘도의(道義)로써 사귐’을 모색하였고, 그 사귐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엄 항수를 예로 든 것이다.
 연암은 ‘예덕 선생전’을 통해 평소 자신이 주장하던 중농사상(重農思想)을 주장하였다. 그는 선귤자의 입을 통해 백성이 토지를 빼앗기면 나라가 황폐해짐으로써 진(秦)나라 말엽처럼 진승(陣勝)·오광(吳廣)·항적(項籍) 같은 무리가 등장한다는 것을 넌지시 경고하고 있다. 또한 천한 자를 우대하는 스승에게 반항하는 자목과 실천적인 논리로써 그를 깨우치는 선귤자의 대립을 주된 줄거리로 하여,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뿌리 깊게 남아 있던 계급 의식의 타파를 유유히 설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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