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신경숙 - 외딴방(1996/문학동네)

会员

외딴 방

-신경숙-

이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의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 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여기는 섬이다.

밤이고, 밤바다에 떠 있는 어선의 불빛이 열어 놓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느닷없이,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이곳에 와서, 나는 열여섯의 나를 생각한다. 열여섯의 내가 있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별 특징 없는 통통한 얼굴 모양을 가진 소녀. 78년, 유신 말기. 미국의 새로 취임한 카터 대통령은 주한 미지상군의 단계적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미국무 차관 크리스토퍼는 미국은 북한 등과 외교관계의 수립을 원하고 있다고 해서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던 때, 열여섯, 소녀였던 나는 역시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 농가의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나, 어떡해, 너 갑자기 떠나가면…… 라디오에선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그룹의 황무지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건 안 돼, 정말 안 돼, 가지 말아.

세상을 바꿔 보려는 다른 바람이 도시를 휩쓸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는, 아니 나의 시골집에서는, 고등학교 진학을 못 한 열여섯의 소녀가 나, 어떡해를 듣고 있다. 무르익던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고 있다.

지금 들으면, 지금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 부를 수조차 없는 서태지의 난 알아요, 에 비하면, 고전적인 노래가 되어버렸지만 나 어떡해, 를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을 때 열여섯의 나는 그만 자지러질 듯 놀라 라디오를 꺼 버린다. 지금까지 듣던 노래와는 너무나 달라서, 그러나 그때 열여섯이었던 나는, 바깥세상의 유신체제와 긴급조치 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들과는 전혀 다른 자리에 놓여있던 나는, 종일 라디오를 듣는 일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다시 라디오를 켠다. 나 어떡해, 는 다시 흘러나온다. 아마도 도시는 나 어떡해, 가 점령하고 있나 보다. 노래를 틀어주는 프로그램에선 어디에서나 나 어떡해, 가 흘러나온다. 몇 번 듣게 되자 열여섯의 나,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다정했던 네가 상냥했던 네가 그럴 수 있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소녀, 좀 멍한 표정이다. 우체부는 열한 시 무렵에 온다. 이때 소녀의 꿈은 이런 것이다. 어서 이 무료한 고장을 떠나 도시의 큰오빠에게로 가는 것. 거기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로 하여금 너를 알게 돼서 기쁘다는 말을 듣는 것. 하지만 우체부는 오늘도 그냥 간다.

여기는 섬, 제주도.

집을 떠나 글을 써 보기는 처음이다. 누구에게나 글쓰는 스타일이 있다면 내 스타일은 바깥에 있다가도 글을 쓰기 위해 집으로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메마른 시간을 달래기 위한 충동적인 여행길에서도 무엇인가 쓰고 싶어지면 나는 그곳이 집이 아님을 안타까워하곤 했다. 집으로 가자, 낯선 곳에서 솟아오르는 문장에 떠밀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글쓰기란 나에겐 집이었을까. 내 속을 뚫고 올라오는 문장들은, 그 순간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나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글을 쓸 때만은 손에 맞고 눈에 익은 것, 청결한 귀와 세면대 앞에 꽂혀 있는 칫솔이 있어야만 했다. 설지 않은 냄새와 늘 입는 티셔츠와 바지 같은 것이, 언제나 갈아신을 수 있는 양말이, 곁에 있어야 했다. 모든 일상이 입 속의 혀같이, 수도꼭지 밑의 세숫대야같이 제자리에.

때로 어떤 문장은 복병 같아서 이런 가을날, 어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걷는 틈, 갑자기 내 속 수풀을 헤치고 튀어나온다. 단박 현실을 무찌르고 나를 꽉 채우고 마는 빛에 싸여 있는 듯한 흥분, 나는 기꺼이 그 복병에 매료되어 약속을 저버린다. 집으로 간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내 스타일을 버린다. 집을 버린다.

집을 버리고 와서 집을 생각한다. 새마을 운동이 슬레이트지붕으로 바꿔놓기 전 초가지붕에서의 어린 시절을, 그 초가에서의 우리 가족을, 그 집 지붕 위로 뚜렷하게 순환하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심호흡.

이제 열여섯의 나, 노란 장판이 깔린 방바닥에 엎드려 편지를 쓰고 있다. 오빠. 어서 나를 여기에서 데려가 줘요. 그러다가 편지를 박박 찢어버린다. 벌써 유월이다. 들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두엄자리에선 보릿짚이 썩고 있는 중이다. 목덜미에 내려앉은 햇볕이 따갑다. 대문 옆의 채송화가 벌써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다. 햇살과 채송화가 싫증이 난다. 나는 헛간벽에 걸려 있는 쇠스랑을 끌어내린다. 처음엔 쇠스랑을 끌고 두엄자리로 가서 썩고 있는 보릿짚을 뒤적거린다. 이마로 쏟아지는 햇빛이 따갑다. 손길이 사나워진다. 어떻게 된 것인가. 쇠스랑이 햇볕에 번쩍 한다 했는데 어설프게 들려 있는 내 발바닥을 찍는다. 열여섯의 나, 멍해진다. 발바닥에 찍혀 있는 쇠스랑을 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놀란 발바닥에선 피도 나지 않는다. 열여섯의 나, 주저앉는다. 아픈 줄도 모르겠고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발바닥에 쇠스랑을 꽂고 썩어가는 보릿짚 위로 드러누워 본다. 파란 하늘이 얼굴로 쏟아진다. 얼마나 지나 바깥에서 돌아온 엄마가 무슨 일이냐, 소리친다. 엄마. 엄마의 기척을 느끼고서야 눈물이 줄줄 흐른다. 그때서야 무섭고 그때서야 아프다. 놀란 엄마의 외침 소리. 눈을 감아라, 꼭 감아. 눈을 감는다, 꼭 감는다. 감은 눈 속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엄마, 쇠스랑에 힘을 주고 다시 한번 외친다. 쇠스랑을 뺄 때까지 눈을 뜨지 마라. 슬몃 떠진 눈 속으로 엄마의 눈이 잡힌다. 끔찍한지 쇠스랑 끝을 잡고 있는 엄마도 눈을 감고 있다. 엄마, 망설이지 않고 발바닥에 꽂힌 쇠스랑에 힘을 주어 쑥 빼낸다.

신경이 얼마나 놀랐는지 쇠스랑이 빠져도 피가 나지 않는다. 독한 것, 엄마는 쇠스랑을 내던지고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래 그걸 꽂고 드러누워 있어? 소리도 안 쳐! 엄마의 큰 손이 열여섯의 내 등짝에 철썩 달라붙는다. 엄마는 열여섯의 나를 마루에 눕혀 놓고 구멍이 뚫린 발바닥에 쇠똥을 대고 비닐로 꽁꽁 묶는다. 열여섯의 나, 쇠똥을 발바닥에 달고 마루에 엎드려 또 편지를 쓴다. 오빠, 나 좀 이곳에서 빨리 데려가 줘.

그곳에서의 봄과 여름 가을 겨울…… 겨울의 광활한 벌판, 휘몰아치는 눈바람. 나흘씩 장설이 내리던 그 고장의 겨울에 대해 추웠다는 기억이 없다. 엄마가 오빠의 털스웨터를 풀어 떠 준 벙어리장갑은 털실이 닳고닳아 바람을 막지 못해 손가락 끝이 늘 시려웠는데도, 가끔은 손이 모자란 엄마가 미처 양말을 기워주지 않아 뒤꿈치가 감자알처럼 쏙 내 보이는 양말을 그냥 신고 다녀 발이 시려웠는데도, 왜 추웠다는 기억이 없는지. 겨울은 남녀노소를 광활한 벌판에서 방으로 들어가게 한다. 방에서 화롯불에 밤을 구워 먹게 하고, 쌀독에서 홍시를 꺼내다 먹게 하고, 고구마광에서 고구마를 꺼내 뒷문을 열고 눈 속에 던져놓았다가 얼게 해서 깎아 먹게 한다. 그런 겨울에 보았다. 무슨 일로인지 어린 소녀는 또랑가에 서서 또랑 너머의 겨울 들판을 보고 있다. 들판은, 아득한 흰 눈 아래, 유일하게 이방으로 향해 열려 있는 철길 쪽에서 다시 몰아치기 시작하는 눈바람 아래, 청둥오리 무리들을 품고 있다. 풀씨며 나무열매며 무척추 곤충들을 잃어버리고 눈 속에서 벼이삭을 찾고 있는 청둥오리 떼가 소녀에겐 아름다워 보인다. 그 광활한 겨울 들판을 뒤덮고 있는…… 배고픈 무리들이.

발에 쇠똥을 대고 마루에 엎드려 편지를 쓰던 나, 일어서서 발을 질질 끌며 헛간으로 간다. 발바닥이 찍힌 후로 어디에 있으나 쇠스랑이 쏘아보고 있는 것 같다. 헛간 벽에 걸려 있는 쇠스랑을 끌어내린다. 쏘아보고 있는 듯한 쇠스랑을 끌고서 마당을 가로질러 우물가로 간다. 나, 망설이지도 않고 깊은 우물 속에 쇠스랑을 빠뜨린다. 물이 첨벙, 소리를 낸다. 한참 후에 우물 속을 들여다본다. 깊고 어두운 우물은 쇠스랑을 삼킨 채 곧 조용해지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하늘을 받아들이고 있다.

글쓰기, 내가 이토록 글쓰기에 마음을 매고 있는 것은, 이것으로만이, 나, 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

어느 날인가 덕수궁 앞에서 갑자기 가슴속을 비집고 올라오는 어떤 문장에 매혹되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탄 개인택시 유리창 앞에 세워진 액자 속에서 오늘도 무사히, 란 글씨를 읽는다. 그 글씨 위에서 흰 옷을 입은 사무엘이 어디선가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오늘도 무사히, 라고 기도하는 사무엘 옆에 세워져 있는 택시기사의 가족 사진. 아내와 아이들. 그런 정경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날의 사무엘과 그날의 가족 사진은, 내 비현실적인 문장을 누르고 아늑한 현실감으로 내 마음속으로 차올랐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덕수궁 앞에 서 있는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고 왜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문장을 잃어버린 나, 택시를 다시 덕수궁 앞으로 돌린다.

첫 장편 소설을 출간하고 얼마 안 된 지난 사월 어느 날, 혼곤한 낮잠 중에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약간 볼륨이 있는 여자 목소리가 나를 찾았다. 낯선 목소리. 나는 그때 그 목소리를 처음 듣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전화를 받는 내가 자신이 찾는 사람이라는 걸 알자, 목소리 결이 달라질 정도로 화들짝 반가워하며 자신을 모르겠느냐고, 하긴 하계숙이라고 했다.

“나야, 나 모르겠니? 나, 하계숙이야.”

“하계숙?”

다른 때 같으면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몇 번 말할 때까지 그가 누군지 감이 안 잡혀도 저쪽이 나를 아는 것 같으면 내가 그를 몰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 안 채게 아, 네, 하면서 어물어물했을 것을, 그날은 잠결에 받은 전화라 하계숙? 소릴 내고 말았다. 그녀는 내심 내가 자신을 기억해내지 못함이 서운했을 텐데도 이내 개의치 않고 바로 자신, 내게 전화를 걸고 있는 하계숙이 누구인지를 설명했다.

“학교 때 너랑 미서랑 친했잖니. 나는 미서랑 친했고, 왜? 좀 통통하고(그녀는 이 대목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그때는 통통했으나 지금은 뚱뚱해진 모양이었다.) 맨날 한 시간 늦게 오고.”

맨날 한 시간 늦게 왔다는 대목에서 나는 그만 잠이 확 달아났다. 그녀가 학교 때, 라고 했을 적만 해도 중학굔지 대학굔지 싶었는데 맨날 한 시간 늦게 왔다고 그녀가 자신에 대해 설명할 적에, 내 기억 속에서 영등포 신대방동 장훈고등학교 뒤편에 있었던 영등포여고의 어느 교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던 것이다.

하계숙, 그녀.

이미 시작된 수업. 목에 리본을 달게 되어 있었던 교복을 입고 복도에 자주색 가방을 가만히 내려놓고 엉덩이를 약간 뒤로 뺀 채 조심스럽게 교실 뒷문을 열던 빨간 아랫입술의 그녀. 늘 우리들에게 미안해, 라고 말하고 있던 눈동자, 통통한 뺨, 곱슬머리.

지금은 1994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건 1979년. 그녀는 낮잠 중인 나를 나무라기나 하는 듯 전화를 걸어와서는 나야, 모르겠니? 하면서 16년 전의 교실문을 쓰윽 열고 있었다.

하루에 4교시로 짜여 있던 수업. 그녀의 아랫입술은 언제나 윗입술보다 조금 더 빨갰는데 한 시간 늦게 와 교실 뒷문을 열 적에는 다른 때보다 더 빨개져 있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붉은지, 그녀, 얼굴의 눈코입은 사라지고 없고 내겐 그 붉은 아랫입술만 남아 있다. 그 아랫입술로 인해 하계숙, 그녀는 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어느 날, 그날도 역시 그녀가 한 시간 늦게 와서 교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올 때 미서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쟤네 회사 지독해. 다른 회사는 다 학교 시간 맞춰 보내 주는데 쟤네는 꼭 한 시간 빼먹게 끝내 준대. 쟤가 아랫입술이 왜 저렇게 빨간 줄 아니? 한 시간 늦게 문 열고 들어올 때마다 문밖에서 자근자근 씹어서 저렇단다. 내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가 조심스럽게 교실 뒷문을 열던, 79년에서 81년까지 나와 함께 그 학교를 다녔던 그녀들 중의 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는 내 목소리결이 달라져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네가 내게 전화를 다 하다니.

여기는 섬, 자연을, 어린 시절 이후로 내게서 멀어져 버린 것 같은 자연을, 되찾은 기분이어서 며칠 간 섬을 걸어다녔다. 첫날 마을을 걸어다니다가 서점도 발견했다. 나는 서점의 너무나 소박한 모습에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웃었다. 미닫이문에 커튼도 달려 있었다. 정성껏 바느질을 한 잔꽃무늬의 커튼이었다. 나는 그 커튼 때문에 서점이라고 써 놓지 않았으면 서점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서점이라 반가운 마음에 별 볼일도 없는데 안으로 쓱 들어가서는 또 웃었다. 서점으로도 너무 작은 규모인데 한쪽에서 면도칼이나 연필 지우개 니들펜 같은 문구류도 팔고 또 한켠에서는 뻥튀기며 고구마과자들을 진열해 놓고 있어서, 서점 주인이 뜻밖에 아리따운 처녀여서 속으로 또 한 번 웃었는데, 그 웃음을 거두고도 속으로 또 한 번 웃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백여 권 꽂혀 있는 진열장에 하계숙으로 하여금 내게 전화를 걸게 했던 내 소설이 턱, 하니 꽂혀 있었다.

나는 진열대 가장자리에 꽂혀 있는 찬송가책을 사가지고 나왔다. 교회나 성당을 나가는 건 아니지만 찬송가란 도대체 어떻게 지어진 노래인지 알고 싶어서 한 권 있었으면 했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금방 필요한 일 이외의 다른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늘 번거로운 일에 휘말려 있고, 꼭 사야 될 책의 목록이 언제나 많았다. 이따금 다시 찬송가가 한 권 있었으면, 싶고 그럴 적마다 다음 번엔 서점에 가게 되면 찬송가를 한 권 사와야지, 마음먹을 뿐이었는데 몇 해를 그냥 지나치기만 하던 찬송가책을 이곳에서 사게 되는구나.

찬송가책을 옆구리에 낀 채 또 오래오래 섬을 걸어다녔다. 내게 익숙한 건 내륙지방의 평야들이지만, 그곳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지만, 지금 나는 섬의 낯선 종려나무나 문주란이나 협죽도나 그리고 가없이 펼쳐지는 검푸른 물결 앞에 서 있다. 문득, 깨달아 지는 건 자연은 누구에게나 자양분이라는 것. 시간을 거슬러 가서 마음속의 외진 길로 가 보게 하는 건 자연이라는 것. 흙을 단 한 번도 밟지 않고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도시에서라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이 찬송가책을 사는 데 다시 몇 해를 보냈을 것이었다.

하계숙의 그 전화가 그 시절 사람들로부터 내게 걸려온 첫 전화였다. 이후, 그때 사람들은 종종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내가 그 학교, 그 교실의 그 사람인가를 물어 왔다. 내가 그 학교, 그 교실의 그 사람인 것을 확인하면 그녀들은 정말, 너구나 하면서 자신들을 밝혀 왔다. 너구나, 나는 남길순이란다. 나는, 최정분이란다. 신문광고에서 너를 봤지. 이름도 같고 얼굴도 비슷하긴 했지만 정말 너라고는 생각 못 했어. 그래도 혹시나 하고 출판사에 전화를 해 봤지. 전화 번호를 안 가르쳐 주려고 해서 사정했단다, 얘. 그녀들은 대부분 나를 신문광고에서 봤다, 고 했다. 그러면서 내 일이 자기들 일처럼 기쁘다고 했다. 내 일이란 내가 책을 낸 일을 말했다. 이종례라고 이름을 밝힌 한 그녀는 남편에게 내 책광고가 실린 신문 속의 내 사진을 가리키며 얘가 내 친구라고 말했다며 그때 은근한 자랑스러움을 느꼈다고 하다가 종내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학교라고 다니긴 다녔는데 연락되는 사람이 없으니 남편이 그랬었거든. 정말 여고를 나오긴 나왔느냐구…… 그는 지나가는 말로 무심히 그랬을 뿐인데 우습지, 그 말이 내 가슴에 사무치지 않겠니…… 내가 얼마나 힘들게 그 학교 졸업장을 땄는데, 저럴까. 서운함으로 며칠 명치끝이 저려서 남편하고 등 돌리고 잤더란다. 그런 판에 신문에 난 너를 보고 내 여고 때 친구라고 말할 수 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버젓했겠니.

수화기 저편의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웃었지만 통화가 끝난 후엔 나도 명치가 저려 수화기를 매만지며 잠시 앉아 있었다. 너만 그랬겠니, 나라고 별수 있었겠어, 그랬다. 내게도 여고 시절이 있긴 있었는데 여고 시절의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나였다. 시시한 드라마에서라도 중년의 여인들이 여고동창모임에 가네 마네, 하면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도 누군가 고등학교 때 친구야, 하며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소개시키면 멈칫해지고 그들을 다시 쳐다보게 되곤 했다.

서로 다른 친구를 사귀면 토라지고 나뭇잎 같은 거 말려서 그 뒷면에 그 애의 이름을 써 넣고, 자전거 하이킹도 가고, 밤새 편지를 써서 그 애의 책갈피에 몰래 끼워놓고…… 내게는,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들에겐, 그런 시절이 없었다. 토라질 틈도, 나뭇잎을 말릴 틈도 우리들 사이엔 없었다.

우리들 사이엔 봉제공장, 전자공장, 의류공장, 식품공장들의 생산부 라인이 존재했다.

내 생은 일찍 부모 무릎 밑을 떠날 생이라고 어디에나 나와 있다. 재미로 본 컴퓨터 점에까지. 태어난 곳을 일찍 떠나 초년 고생이라고. 이따금 인생에서 초년이란 어디까지를 말하는가, 생각해 본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를 생각할 때처럼 골똘히. 그리고는 곧 서른까지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서른둘이니까, 그러면 초년 고생은 지나간 거니까. 열여섯에, 그 파란 대문집 마루에 앉아 오빠의 편지를 기다리다가 내 발바닥을 쇠스랑으로 찍어버렸던 열여섯에, 나는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 독함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순결한 한 가지를 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그걸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너무 외롭겠다고. 그저 살고 있다가는 언젠가 다시 쇠스랑으로 또 발바닥을 찍어버리겠다고.

열여섯의 나, 모내기가 끝나던 마지막 날 밤기차를 타고 쇠스랑을 삼킨 우물이 있는 집을 떠난다. 마을의 끝은 철도이고 그 건너에서 아버진 상점을 하고 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드리고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라 한다. 그 버스를 안마을 쪽에서 엄마가 타겠다고. 집을 나서기 전 열여섯의 누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잠든 일곱 살 동생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태어나서부터 일곱 살 누나의 어린 등에서 거북이처럼 붙어 자란 동생은 언제나 누나가 어디 갈까 봐 전전긍긍이다. 누나의 등에서 누나의 냄새를 맡고 자란 동생에겐 아직 누나만이 최고다. 동생에겐 학교만이 누나를 보내 주어야 할 곳이다. 누나가 학교 갔다 올게, 하면 동생은 꼭 와, 한다. 동생은 놀다가도 해만 저물면 누나, 하고 소리치며 집으로 뛰어들어온다. 아무 데서나 누나, 부른다. 닭알을 꺼내면서, 똥을 싸면서, 감을 따면서. 한번, 신작로에서 트럭에 머리를 치인 동생은 병원에 실려 가서도 누나, 누나, 누나를 찾는다. 찢긴 머리를 꿰매면서도 누나 데려다 달라고 한다. 누나, 어딨어. 누나한테 갈 테야. 할 수 없이 초등학교 사 학년생인 누나는 책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하교한다. 동생과 함께 병원에서 자고 병원에서 밥 먹고 병원에서 학교를 간다. 그런 동생은 누나와 헤어질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질 않다. 도시로 간다고 하면 울음보를 터뜨릴 것이기에, 떠난다고 말도 못 하고, 잠든 동생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동생이 슬몃 눈을 뜨고 누나를 본다. 밤에 외출복을 입고 있는 누나가 이상했는지 잠결에도 묻는다.

“누나 어디 가?”

누나는 아니라고 한다. 아무 데도 안 간다고. 안심한 동생은 다시 눈을 감는다. 누나는 잠든 동생의 머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흉터를 만져본다. 아침에 깨어나 얼마나 보챌 것인지.

철도를 건너지도 못했는데 버스의 불빛이 보인다. 잠든 동생을 들여다보느라고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열여섯의 나, 점점 가까워져 오는 버스의 불빛에 조급해져서 아버지! 외친다. 상점에서 아버지가 뛰어나오는 것과 버스가 와서 멈추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아버지, 나, 가요! 열여섯의 나는 아버지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 하고 버스에 오른다. 얼른 버스 뒤로 가서 차창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아버지가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실루엣만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와 한 집에서 살지 못했다. 어머니와도 동생과도 같은 집에서 닷새 이상을 자지 못했다.

안마을에서 버스에 올라탄 엄마는 열여섯의 나에게 묻는다.

“아버지에게 인사는 했냐?”

“네.”

그게 인사였을까. 아버지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상점을 향해 아버지, 나, 가요! 소리친 것이. 조금만 일찍 나설걸. 상점에서 뛰어나와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계시던 아버지의 덩그란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버스는 벌써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다. 오 분 전의 일이 벌써 지난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오렌지색 한복을 입고 있다. 저고리 위에 겹저고리가 달려 있고, 옷고름 대신 국화꽃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있다. 내가 브로치를 바라보자 네가 수학여행 가서 사다 줬던 것이다, 고 엄마는 말한다. 흰 동정에 때가 묻어 있다. 내가 그 동정에 때를 쳐다보는 것 같자, 엄마는 말한다. 바꿔 단다는 것이 바빴구나.

읍내 역에서 함께 도시로 가게 되어 있는 외사촌을 만난다. 매끈한 다리를 가진 외사촌은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바싹 여윈 외숙모와 함께 서 있다. 매끈한 외사촌은 열아홉. 내 얼굴을 쓰다듬는 외숙모의 손에서 생선 비린내가 맡아진다. 외숙모는 내 얼굴을 거쳐 외사촌의 손을 잡는다. 작별을 하는 모녀의 손이 서로 엉긴다.

“싸우지들 말고.”

외사촌의 손을 놓은 외숙모의 눈에 눈물이 글썽하다. 개표를 해야 할 때가 되자 외숙모는 외사촌에게 곧 편지해라, 당부한다. 까칠한 외숙모를 대합실에 두고 엄마와 외사촌과 나는 역 안으로 들어간다. 열여섯의 나, 차창에 손바닥을 대고 플랫폼을 내다본다.

잘 있거라. 나의 고향. 나는 생을 낚으러 떠난다.

밤기차 안에서 엄마는 말이 없다. 낮에 모내기를 마치느라고 허리를 펼 새도 없었을 텐데 엄마는 졸지도 않는다. 엄마는 이따금 옆자리의 나를 쳐다본다. 작별은 상대방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새삼 깨닫게 한다. 저이가 저런 모양새의 눈을 갖고 있었던가, 하고.

열흘째,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 점심을 주문하는 나에게 드디어 식당 아줌마가 말을 걸어왔다. 오후 두 시. 식당의 한창 바쁜 시간은 지났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나는 늘 오후 두시 무렵에 그 식당에 가고 있어서 바쁜 때가 지나 한숨 돌리고 있는 아줌마를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게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는 내 밥을 내다 주고 세수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면서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요.”

“오래 계시네요.”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입 속에 김치를 막 넣었던 참이라,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아줌마는 이렇게 오래 계속 올 거라고 처음부터 말했으면 우리 식구들 밥먹는 것같이 해서 좀 싸게 해 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식당 메뉴표를 쳐다봤다. 얼마나 더 싸게 해 준단 말인가. 메뉴 밑에 음식값이 쓰여 있다. 김치찌개는 사천 원. 전복이나 조개 가재를 넣어 된장을 풀어 끓인 뚝배기는 오천 원. 육개장은 삼천오백 원.

“혼자 왔어요?”

아줌마는 다행히 뒤에다가 여자가, 라는 말을 붙이진 않았다.

“네.”

“관광 왔어요?”

“아니에요.”

“관광하러 온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관광 오신 분이면 매일 여기에 있을 턱이 없으니까.”

나는 또 웃었다.

“그럼 일하러 왔어요?”

난감해졌다. 일하러 왔다고 해도 되는 걸까? 나는 일하러 온 것일까? 대답을 못 하고 글쎄, 그게, 하면서 또 웃었다. 내 웃음을 아줌마는 일하러 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파마머리에 빗질을 하고 난 뒤 접시에 귤 세 개를 담아 내오면서 아줌마는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을 하는데요?”

밥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접시 위에 얹어진 귤껍질을 깠다. 싱싱한 귤향기가 콧속으로 시원스럽게 스며왔다. 아줌마는 다른 탁자에 놓여 있던 신문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밥을 먹고 나면 늘 신문을 보곤 했던 나를 기억해서 그런가 보았다. 아줌마 손이 닿은 신문자리에 로션 냄새가 배어 있다. 나는 아줌마의 친절 앞에 대답을 안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민망해져서 얼른 글을 쓰는 일을 해요, 라고 말했다. 순간 아줌마의 얼굴, 갈색 기미가 지도처럼 내려앉은 뺨이, 아주 환해졌다.

“세상에, 그래요? 영광이에요!”

영광이라구? 나는 그만 수줍어져서 피식, 웃었다.

……낯선 사람에게, 이방의 사람에게, 나 자신을 두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해 보긴 처음이다…….

엄마.

엄마의 검은 눈. 그 눈이 소 눈을 닮았다, 고 그날 밤, 처음 생각했다. 그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우리 여섯 형제를 길러 낸 지금까지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맑은 눈을 간직하고 계시는지……이따금, 엄마의 눈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열여섯의 초여름, 밤 기차 안의 엄마의 검은 눈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엄마는 서울로 가는 기차를 두 번째로 탄다. 언젠가 큰오빠가 서울에서 대학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몇 가지 떼어 보내라고 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서류가 필요한 날짜 하루 전에서야 편지를 받는다. 우편으로 보냈다가는 늦는다. 엄마는 인편이 된다. 서류를 가지고 밤 기차를 탄다. 엄마의 의식 속에는 아들에게 내일 필요한 서류를 그 밤 안에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런 엄마가 서울에 대해 아는 것은 아들이 용문동 동사무소에 근무한다는 것뿐이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를 말씀하실 적이면 엄마는 언제나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옆자리에 너그 오빠만 헌 청년이 앉었길래 내가 가방 속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보임서는 사실은 내 아덜이 대학에 갈라고 내일까지 이것이 꼭 필요헌디 내가 길을 몰른디 어쩌먼 좋을까, 했더니만 그 청년이 역에서 내려서 그 야밤에 나를 용문동 동사무소까지 데리다 주더라. 택시 운전사도 모르겠다는 길을 그 청년이 이리저리 물어서는 데리다 주었어야. 사방은 캄캄허고 그 청년이 여긴가비요, 하길래 닫힌 문을 막 두들기니껜 니 오라비가 나왔는디 그 청년은 나를 데리고 주느라고 그 고상을 해 놓고는 인사도 안 받곤 그 길로 팽허니 가 버리더라.

그렇게 씩씩하게 서울을 다녀온 엄마가 나를 오빠에게로 데려다 주러 가는 길엔 눈물이 글썽하다. 나는 엄마의 그 눈을 피해 오렌지빛 한복이 비치는 어두운 차창 밖을 보고 있다. 그 곁에 옮겨 심어 놓은 채송화같이 앉아 있는 외사촌을 보고 있다. 엄마는 손을 뻗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역에서 이미 외숙모와 작별한 외사촌이 엄마와 나를 외면한다.

“먹을 테냐?”

엄마는 가방에서 삶은 계란을 꺼내 준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껍질을 벗긴 삶은 계란을 엄마에게서 받으면서 외사촌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 내게 보라고 준다.

“무슨 책이야?”

“사진집이야.”

입술에 삶은 계란 부스러기가 묻어 있는 외사촌은 나직이 말한다.

“나는 사진 찍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사진 찍는 사람? 열여섯의 나, 되뇌인다. 사진관의 사진 찍는 사람은 다 남자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외사촌을 쳐다보며 사진 찍는 사람들은 다 남자들이더라고 말한다. 외사촌은 피식 웃으며 그런 사진 찍는 사람들말고 이런 사진 찍는 사람, 하면서 내 무릎에 놓아 준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 준다. 외사촌이 넘기는 장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담겨 있다. 사막이며, 나무며, 하늘, 그리고 바다, 외사촌은 어느 장에서 넘기는 걸 멈추고 내게 이것 봐, 속삭인다. 밤이고 숲 속이고 그리고 나무 위에 별들이 하얗게 내려앉아 반짝이고 있다.

“새들이야.”

나는 경이로워서 내 무릎 위의 사진집에 얼굴을 가까이 댄다. 자세히 보니 밤이 찾아온 숲 속의 나무 위에 앉아 반짝이고 있는 건 별이 아니라 백로였다. 백로들은 어둠에 잠긴 숲 속, 높은 나뭇가지를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차지하고 앉아 하얗게 빛나고 있다.

“자고 있는 거야, 아름답지?”

나는 고갤 끄덕인다. 아득한 밤하늘 아래, 흰 새들은 아름다이 숲을 덮으며 온화하게 자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새들을 찍고 싶다구.”

나는 외사촌이 신비로워서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본다. 새들을 찍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뺨은, 백로들이 자고 있는 숲 속 덤불이나 흙, 나뭇잎에서 나는 싱그러운 냄새가 잔뜩 묻은 것처럼 상기되어 있다.

“돈을 벌면 나는 맨 먼저 카메라를 살 거라구.”

밤기차는 외사촌의 꿈을 싣고 달린다. 나는 이제 외사촌의 속삭임은 듣고 있지 않다. 이미 나는 어둠 속, 그 아득한 밤하늘 아래, 숲을 아름다이 뒤덮으며 온화하게 자고 있는 백로들을 향해 마음의 기약을 하고 있다. 언젠가, 기필코 그 높은 나뭇가지의 흰 새를 보러 가리라, 별에 얼굴 향하고 자고 있는 그 아름다움과 온화함을 보러 가리라.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나와 그때까지 봤던 것 중의 제일 높은 것. 그땐 빌딩 이름이 대우라는 걸 알지 못했다. 엄마를 따라 새벽 서울역 광장을 걸어 나오다가 열여섯의 나, 몇 걸음 앞서 걸어 가는 엄마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가 엄마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는다. 그것도 모자라 엄마의 손을 찾아 힘주어 쥔다.

“왜 그러냐?”

“무서워.”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저만큼의 대우빌딩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엄마와 외사촌과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열아홉의 외사촌은 그 거대한 짐승 앞에서도 의젓하다. 엄마는 겁먹고 있는 내게 저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암것도 아니란다. 그냥 철근일 뿐이지.”

엄마가 그렇게 말해도 도시에 처음 발을 딛은 열여섯의 나, 여명 속의 거대한 짐승 같은 대우빌딩을, 새벽인데도 벌써 휘황하게 켜진 불빛들을,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쳐다본다.

큰오빠는 그때껏 방이 없다. 그것이 우리가 밤차를 타고 와야 하는 이유다. 서울에서 우리가 잘 데라고는 여관밖에 없으니까. 방이 없어도 큰오빠의 피부는 희다. 손톱도 깨끗하고 흰 셔츠도 눈부시다. 반듯한 눈코입이 긴 얼굴에 흰 피부에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가 낮에는 동사무소 청소과에 근무하고 밤에는 야간대학 법학과에 다니는 청년이라는 걸 스스로 말하기 전에 짐작하기란 어렵다. 그는 세상의 힘든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한 용모이므로. 깨끗한 그의 용모는 물질이 풍요로운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청년의 냄새가 물씬 흐른다. 그런 그가 동사무소 앞에서 밤 기차를 타고 상경한 여동생과 외사촌 그리고 모친에게 따뜻한 콩나물국을 사 먹이고 있다. 그의 숙소는 동사무소 숙직실. 그가 그 동사무소에 출근하게 된 날부터 동사무소 직원들은 숙직이 없다. 그가 늘 거기서 자니까. 그는 곧 외사촌과 나를 직업훈련원에 데리고 갈 것이다. 오늘이 훈련원 입교날인 것이다.

“일이 힘들 거야.”

오빠는 아직 닥쳐오지 않은 미래보다는 더 힘겹게 말한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연수를 받고 공단으로 취직을 하면 학교를 갈 수 있을 거다. 내년부터 산업체 특별학급이 생겼으니까.”

오빠는 변명하듯 덧붙인다.

“그렇게 학교를 가지 않으면 시골 출신이라 전수학교밖에 못 간다. 전수학교는 정규 고등학교가 아니야.”

직업훈련원은 구로 공단 입구에 있다. 식당을 나와 버스를 타고 공단 입구로 간다. 직업훈련원 운동장에서 열여섯의 나와 열아홉의 외사촌이 엄마와 작별을 한다. 그날의 훈련원 운동장을 기억한다. 오렌지빛, 멀어지던 오렌지빛을. 엄마의 큰 손에 내 손이 쥐어진다. 엄만 나를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바닥으로 외사촌의 손바닥에 천 원짜리를 쥐어 준다.

“배고플 때 곯지 말고 야구르트 사먹거라.”

외사촌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등 뒤에 우리를 두고 훈련원 쇠문을 향해 걸어가는 엄마의 발걸음은 자꾸만 되돌려진다. 엄마는 그 운동장에서 오렌지빛 얼룩이다. 얼룩은 멀어지다가 다시 다가와서 외사촌과 내 손을 서로 잡게 하고는 서로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너희뿐이여. 오빠 속썩이지 말고 서로 의지해야 돼. 알겄냐.”

다시 멀어지는 오렌지빛 얼룩, 한 발짝 앞에 훌쩍 키가 큰 큰오빠가 땅바닥을 보며 걷고 있다. 직업훈련을 받으려고 모여든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열여섯의 나는 시야에서 점점 작아지는 오렌지빛 얼룩과 큰오빠의 등을 쳐다보고 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엄마와 오빠를. 멀어지고 멀어지고 멀어지다 아예 보이지 않는다. 열여섯의 나는 괜한 땅바닥을 발로 콕콕, 찍는다.

내 서울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하계숙, 그녀들을 만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녀들과 만나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아직 만나지 못한 그녀들과 나 사이엔 무엇이 있는 걸까.

처음만 어려웠지 자주 통화하게 된 하계숙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어딘가가 또 저려왔다.

“네가 썼다는 책을 사서 읽어 봤단다. 첫 책만 못 읽었어. 큰 서점이 있는 데로 외출하기가 쉽지 않단다. 네 첫 책은 동네 서점에서 구하기가 힘들더라구. 그래서 그것만 못 봤지…… 어린 시절 얘기도 많이 쓰는 것 같고, 대학 때 이야기도 쓰는 것 같고 사랑 얘기도 쓰는 것 같은데 우리들 얘기는 전혀 없었어.”

“…….”

“우리들 얘기가 혹시 써져 있을까, 하고 일부러 찾아가며 읽었거든.”

내가 침묵을 지키자, 하계숙은 내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목소리의 톤을 가라앉혔다.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나는 긴장해서 수화기를 바꿔들었다. 좀 수다스럽다 싶을 만큼 말을 유쾌하게 하던 하계숙은 내 긴장을 침묵으로 잘못 받아들이고 시무룩해졌다.

“넌,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그렇지 않아, 라고 하계숙에게 대꾸해 주었으면 내 마음은 편했을까.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아니야, 라고 하지 못했다. 자랑스럽다고 여긴 적도 없었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모르겠다. 순간순간 부끄러웠을지도. 그러나 그런 생각은 심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고 해야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내게 주어진 상황들이 어렵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그런 생각도 못 했다. 하루하루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야 했으니까. 늘 분주하고 아침이면 아침대로 저녁이면 저녁대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이 아주 일상적인 것, 발등에 떨어져서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을 마치면 얼른 자거나 일어나거나 했으니까. 오히려 그때 내가 몹시 지치고 피로했었나, 보다는 생각은 서른 가까이 되면서 들었다.

서른 가까운 어느 날, 나는 몹시 피로를 느꼈고, 그 피로가 그때의 피로임을, 그때 이미 나는 서른 살이나 서른둘이 되어 있었음을, 단숨에 깨달았다. 그걸 알게 한 건 다름아닌 내가 외경스러워했던 글쓰기였다.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처럼.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 쓰는 자에겐 맡겨진 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뱃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폭포를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따라, 제 발짝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길로.

직업훈련원. 열여섯의 나는 오전 여섯 시에 기숙사에서 기상한다. 눈을 뜨면 간혹 우물 속에 빠뜨리고 온 쇠스랑이 생각난다. 깊은 우물 속에서 쇠스랑은 어떤 꼴을 하고 있을 것인지. 그러나 상념도 잠시,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종소리를 듣는다. 명랑한 음악에 맞춰 보건체조를 한다. 맡은 구역 청소를 하고 차례를 기다려 세면을 한 뒤 아침을 먹는다. 국과 반찬 밥을 한곳에 담게 되어 있는 식기를 열여섯의 나는 처음 본다. 식기는 낯설고 김치맛도 야릇하다. 열여섯의 나, 처음에 이상한 식기와 야릇한 맛의 김치 때문에 밥을 먹지 못한다. 외사촌이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으면 나는 김치를 탓한다. 김치에 이상한 젓갈이 들어갔어, 엄마는 황새기젓갈을 쓰는데, 라고. 식기를 탓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식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시골집의 살강에는 내 밥그릇과 국그릇이 엎어져 있을 것이다. 외사촌은 매점에서 빵을 사다 준다. 열아홉의 외사촌은 열여섯의 나를 달랜다.

“자꾸 빵을 사 먹으면 안 돼, 우리는 돈이 조금밖에 없고 여기에서 취직이 되어 월급을 받을 때까지 돈은 생기지 않는다구.”

어쩔 수 없이 낯선 식기 안의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대 본다. 또 엄마의 살강에 놓여 있을 내 밥그릇과 국그릇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집 나올 때 누나 어디 가? 라고 묻던 일곱 살 막내동생의 잠 묻은 얼굴이 낯선 식기 안 국물 위에 떠 있다. 밥을 푹 떠서 먹는다. 국물도 후루룩 마신다. 야릇한 맛의 김치도 질겅질겅 씹어 삼킨다.

강사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산업 역군이라는 말을 쓴다. 납땜질을 실습 시키면서도 산업 역군으로서, 라고 말한다. 훈련원 기숙사 문에는 유치원에서처럼 꽃이름으로 된 방 이름이 각 방문에 붙어 있다. 내가 기숙하던 그 방의 꽃이름은 무엇이었는지? 장미? 백합? 다만 나무 침대에 사물함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는 생각. 그로부터 몇 년 후, 텔레비전에서 ‘동작 그만’이라는 코미디를 방영한 적이 있다. 열여섯의 내가 묵던 기숙사와 ‘동작 그만’ 속의 군대 내무반이 닮아 있어 나는 그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했다. 단지 우리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는 이층이 더 있다. 한 층에 다섯 명씩 묵게 되어 있다. 외사촌과 나는 엄마의 말처럼 서로 의지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간 이층에서 나란히 생활한다. 아홉 시 점호를 마치면 일제히 불을 꺼야 한다. 어둠 속에서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보고 있으면 새벽에 눈을 뜰 때처럼 또 우물 속의 쇠스랑이 떠오른다.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쇠스랑의 침묵을 생각하면 발바닥이 아파와 몸을 뒤집고, 손을 뻗어 외사촌의 이마를 만진다. 눈도 만진다. 그녀가 자는 것 같으면 그녀를 흔든다.

“왜 그래?”

나는 쇠스랑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둔다. 그러나 혼자 눈 뜨고 있기는 싫어 자꾸만 잠들려는 외사촌의 이마를 만지고 눈을 만져댄다. 외사촌이 손바닥으로 내 손을 탁 칠 때까지.

〈후략〉

―〈외딴 방〉(1995)

上页 下页

官方微信:韩语学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