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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 잔인한 도시(1978/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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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어느 가을, 어느 도시의 교도소 근처 공원
제재 : 방생의 집
         (방생의 집은 도시의 잔인함과 위선의 결정체이다. 사람들의 선의에 의해 방생이 이루어지나 비 정한 장사꾼의 상술(속 날개를 자름)에 의해 다시 새장에 갇히는 새인 것이다. 
 새 ⇒ 새장 = 감옥
주제 : 현실에 대한 인간 소외와 인간성 상실의 문명 비판

등장 인물
사내 : 오랫동안 복역한 죄수.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옥중 동료와의 언약을 지키는 인물. 자신의 편지가 아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석방 후에도 공원에서 아들을 기다림. 첫 복역 후, 불륜한 아내와 불륜남에게 분노하여 살해하려다가 실패하고 도리어 불륜남(일제 때 형사 앞잡이)에 의해 다시 교도소에 수감됨. 석방과 수감으로 한 평생을 보내게 됨. 석방과 수감을 반복한다는 점과 불행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의 이미지와 유사함(동병상련)
새 장수(젊은이) : 풀어준 새를 다시 잡아다가 파는 사내. 우리 시대에 인간 사슬을 만드는 자로 은유된 인물. 현대 사회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라고 말하면서도 현대사회라는 구조 속으로 얽어매고 다시는 그 구조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간교와 위선의 인간을 함축하는 인물.

‣ 이해와 감상
 <잔인한 도시>는 1978년 제2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심층적인 인간 소외 의식을 다양하고 복합적인 상징성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종래의 평면적인 리얼리즘에서 맛볼 수 없던 새롭고 깊은 감동의 공간을 창조해 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새장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작된 해방과 구속의 반복을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적 삶을 하나의 리얼리티로 제시하고 있으며, 죄수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그러한 악순환의 끈을 끊어 버리고 인간 상주(常住)의 따뜻한 고향으로 귀환하려는 인간의 꿈과 휴머니즘적 주제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는 어두운 현실과 밝은 이상을 설득력 있는 구상적 이미지로 다 같이 부각시킴으로써 관념적인 주제에 박진감 있는 현실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따라서, <잔인한 도시>는 70-80년대 절대적 사회의 부정적인 국면을 드러내면서 인간 구원의 절대적 문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이해와 감상2
 제2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인간 상주의 따뜻한 고향으로 귀환하려는 한 죄수의 방생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꿈과 그 구제의 가능성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오가는 사람이 없었던 교도소로 이어가는 길을 한 사내가 걸어 나온다. 초라한 행색에 그를 맞아주는 것은 저녁해가 지어 준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사내는 공원 입구에 있는 ‘방생의 집’ 앞에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머문다. 사내는 그 근처에서 서성이며 새들의 방생을 깊은 감동으로 지켜본다. 다음날부터 공원을 돌며 흙 묻은 동전을 주워 새들을 산다. 
 처음에는 자신의 몫으로, 다음날은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동료 죄수들과 감옥 안에서 죽은 친구를 위해 새들을 산다.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던 백동테 안경의 청년에게 차츰 말을 걸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평생을 감옥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이야기와 찾아올 아들이 있고 그 아들과 함께 갈 고향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사실이 아님이 곧 밝혀진다.
 어느 날 밤 공원에서 잠을 자던 사내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누군가가 한밤중에 공원을 돌며 새 사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쫓기던 새 한 마리가 사내의 품속으로 날아든다. 다음날 사내는 그 새를 가게 새장에서 발견한다. 백동테 안경의 청년은 새가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날갯죽지 밑 속깃을 가위로 잘라내고 있었다. 사내는 방생에 더 이상 신명을 느끼지 못하지만 자신이 노역을 하여 모은 돈 전부를 주고 그 새를 산다.사내는 이제 잔인한 도시를 빠져 나간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가을날 저녁 햇살 속을 지나는 사내의 손에는 ‘방생의 집’ 새 한마리가 발톱과 부리를 쉴새 없이 꼼지락대고 있다. 사내는 등 뒤로 와 닿는 햇살이 따뜻하다고 느낀다.
 이 소설은 이청준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진실에 대한 탐구의 소산이다. 백동테 안경의 젊은이가 운영하는 방생의 집은 도시의 잔인함과 위선의 결정체이다. 원래 방생의 집은 새들의 자유를 통해 갇힌 이들의 자유를 기원하는, 오래전 감옥을 나온 한 노인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가 상업적으로 변화되면서 방생으로 인해 새들은 더 이상 멀리 나갈 수 없도록 강제로 날개를 찢겨야만 하는 치명적인 위협에 처하게 된다.
 새를 방생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꿈꾸어 왔던 사내는 젊은이의 사악한 상술을 알고 난 뒤에 분노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가 없다. 자유를 갈망하던 자신의 의지가 또 한번 꺾였는데도 사내는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주고 날개가 찢긴 새를 다시 사들인 뒤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과 새를 위한 구원의 길을 찾아 떠난다. 작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통해 거대한 위선과 억압에 꺾이지 않는 참사랑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 보충 학습
['새 장수'와 '죄수'의 의미]
▶새 장수의 이야기 : 젊은이가 운영하는 집은 방생의 집은 도시의 잔인함과 위선의 결정체이다. 조작된 해방과 구속의 반복을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적 삶을 하나의 사실로 제시하고 있다.
▶죄수의 이야기 :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과 새를 위한 구원의 길을 찾아 떠남으로써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통해 거대한 위선과 억압에 꺾이지 않는 참사랑의 모습을 실현하고 있다.
 
▣ `제2회 이상문학상 선정이유서`에서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는 정말 여러 가지 함축성 있는 심벌리즘을 시도하고 있다. 자연이 무성한 공원을 배경으로 가진 감옥으로 통하는 쓸쓸한 길, 오랜만에 그곳에서 자유세계로 나온 불우한 삶을 살아온 한 늙은이, 그들 약하고 죄진 인생들의 허전한 심령을 역이용해서 돈을 버는 ‘방생(放生)’의 집의 젊은이, 새 한 마리를 가슴에 품고 남쪽 고향 대숲을 머릿속에 그리며 귀향하는 한 늙은 인생의 휴머니즘, 그런 가증적인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그려져서 가슴 뭉클했다.

▣ `심사평` 중에서 
새를 사서 날리는 감정과 잔인한 상행위가 시적으로 좋은 대조를 이룬다. ― 김동리 
한층 높은 차원에서 현실을 내려다보고, 그 특질을 추상화하고 재구성한 작품이다. -─ 백철 
여러 가지 함축성 있는 심벌리즘을 시도하고 있다. -─ 유주현 
이런 소재에 눈을 돌린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 최정희 
해방과 구속의 조작된 반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 현실 속에서, 따뜻한 인간상주의 고향을 모색한다. -─ 이어령
▣ `수상소감` 중에서 
“정신의 틀, 정신의 신발” 세상 사람들의 발은 모양과 크기가 각각 다르다. 신발가게도 모양과 크기가 다른 신발들을 진열해야 물건이 팔린다. 소설은 이래야 한다. 이것만이 좋은 문학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한 잠정적인 희망일 수 있을 뿐이어야 할 듯싶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각기 그 나름의 다른 모습과 크기의 정신으로 살아가며, 그들은 각기 자신에게 알맞는 자기 정신과 삶의 신발을 원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곧 그 시대와 개인의 삶을 감당할 알맞는 정신의 틀을 짓는 일이며, 그 정신의 틀, 정신의 신발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삶과 존재의 양식이요, 그 양식에의 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첫 번째 감옥살이를 한 후로 덫에 걸린 사람처럼 감옥을 드나들었던 늙은 사내. 12년간의 교도소 생활을 막 풀려나온다. 교도소 근처 공원 입구에 ‘방생의 집’이라는 작은 가게가 있다. 문자 그대로 출소의 기쁨을 느끼는 곳이다. 거기서 젊은 사내가 새장 속에 든 새를 판다. 사내는 비상하는 새의 모습을 감동 어린 눈으로 지켜 본다. 사내는 새 장수에게 다가가지만 호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기만 한다.
 사내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효성 지극한 아들이 아버지의 출감 날짜에 맞춰 마중나올 터이나 아마도 편지가 늦게 도착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사내는 그 날 밤을 공원 숲에서 보낸다. 다음 날, 공원 모래밭에 떨어진 동전들을 모아 새를 사서 날린다. 자신과 감방 동료들의 소망을 모아 거듭 새를 날려 보낸다. 그는 새 장수 젊은이에게 아들 얘기를 해 준다. 그러나 새 장수는 무심하다.
 다음 날도 늙은 사내는 새를 방생한다. 새 장수는 성업 중이고, 사내는 그 많은 새를 어디서 마련하는지 궁금해 한다. 마침내 비밀을 알게 된다. 새장을 떠난 새는 공원 숲으로 날아가고 새 장수는 어두운 밤 플래시 불빛으로 새를 잡는다는 것을, 게다가 새의 안쪽 깃털을 예리하게 잘라내어 새가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숲에서 자던 사내에게 새 한 마리가 떨어져 내린다. 이상하게도 그를 겁내지 않는다. 다음 날 사내는 새를 날리러 새 장수에게 갔다가 그 새를 발견한다. 속털이 잘려 나간 새가 닥쳐올 추위에 견디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사내는 교도소 노역의 품삯으로 받아 아껴 두었던 돈으로 그 새를 사서 품 안에 담고는 잔인한 도시와 결별한다. 사내는 새에게 쉴새없이 혼자 중얼거린다.
“하지만 네놈도 조금은 명념해 봐야 한다. 탱자나무 울타리와 붉은색 벽돌 굴뚝이 높은 기와집, 게다가 뒷밭이 넓고 뒤쪽 언덕에 푸른 대숲이 우거져 내린 집…… 그런 집이 있는 동네가 나서는 걸 말이다. 그야 언젠가 너도 알겠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찾아가는 남쪽 동네란다.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찾기는 어려운 곳이지. 하지만…… 글쎄, 그 남쪽 동네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지 네가 어떻게 알기나 할는지…….

잔인한 도시

이청준

날씨가 제법 싸늘해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날 해질녘 그 사내가 문득 교도소 길목을 조그맣게 걸어나왔다.
그것은 여간 희한한 일이 아니었다. 근래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교도소는 도시의 서북쪽 일각, 벚나무와 오리나무들이 무질서하게 조림된 공원 숲의 아래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 무질서한 인조림이 끝나고 있는 공원 입구께에서 2백 미터 남짓한 교도소 길목이 꺾여들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선 교도소 길목과 높고 음침스런 소내 건물들 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눈에 모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교도소 골목을 오르내리는 것이 면 강아지 한 마리도 움직임이 빤했다.
하지만 그 길목은 언제부턴가 사람의 눈길을 끌 만한 움직임이 끊어진지 오래였다. 교도소와 관련하여 길목을 오르내리는 사람의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것도 교도소를 새로 들어가는 쪽보다는 몸이 풀려서 나오는 쪽이 더욱 그랬다. 아마 교도소를 새로 들어가는 쪽은 아주 끊어져 없어지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들어가는 쪽은 언제나 철망을 친 차편을 이용하는 있는 터이어서 그것마저 낌새가 분명칠 못했다. 그야 교도소 직원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길목을 지나가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물론 이 길목에서 특별히 사람의 눈길을 끌만한 움직임은 못되었다. 이 길목에서 사람의 주위를 끌 움직임이란 역시 형기를 끝냈거나 당국의 사면으로 몸이 풀려 나오는 출감자들이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몇 해 동안 교도소 수감자들 가운데선 몸이 풀려나 그 길을 걸어 나온 사람이 없었다. 출감자를 내어보내기 위해선 교도소 문이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교도소 안엔 이미 내보낼 죄수가 아무도 없거나, 혹은 그곳엔 아예 종신형의 죄수들만이 수감되고 있는 그런 감옥이나 아닌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교도소의 마지막 출감자가 언제 마지막으로 그 길을 걸어나갔던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었다. 아마도 이 교도소를 교도관들 가운데서조차 그들이 그 행운의 출감자를 내보내기 위하여 언제 마지막으로 교도소의 철문을 열었었던가를 더듬어낼 수 있는 소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는 흔치가 않을 터이었다.
출감자의 모습이 끊어진 것만도 아니었다. 교도소를 나오는 출감자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한 다음에도 길목은 한동안 재소자 면회를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로 인적이 심심치를 않았었다. 한데 언제부턴가는 그 면회객들의 발길조차 이 길목에서 깨끗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교도소길은 이제 오랜 정적 속에 망각의 길목으로 변해졌고, 그 길목을 걸어나오는 출감자나 면회객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는 시간만큼 교도소와 교도소 수감자들의 존재도 바깥 세상에선 기억이 까마득히 잊혀져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교도소 교도관들의 출퇴근 행사는 어김없이 계속 되어오고 있었고, 밤이 면 높다란 감시탑들의 탐조등 불빛들도 그 확고부동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건 이를테면 그 깊은 세상 사람들의 망각 속에서도 교도소의 존재와 기능은 여전히 엄존하고 있다는 가차없는 증거였다.
그러나 아닌게 아니라 이날 저녁 사내가 마침내 그 길목을 다시 걸어나온 것이다.
교도소는 과연 죄수가 없는 유령의 집으로 변해진 것이 아니었다. 종신형 수형자들만이 수감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날 저녁 사내가 그 길목을 걸어나온 것은 바로 그런 모 든 의문들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답인 셈이었다.
사내의 뜻하지 않은 출감은 그러니까 교도소와 교도소 길목에선 그만큼 오랜만의 일이었고 그만큼 눈길을 끄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나오고 있는 사내 자신의 표정엔 막 상 어떤 새삼스런 감회나 즐거움의 빛 같은 것이 전혀 엿보이질 않고 있었다.
사내는 언젠가 그가 교도소를 들어갈 때부터 그의 전 재산이었던 낡고 작은 사물보퉁이 하나를 손에 든 채 마치 망각의 길을 헤쳐 나오듯 변화 없는 발걸음으로 교도소 길목을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전쟁 후에 한창 유행하던 염색 야전잠바 윗도리에, 역시 낡고 색이 바랜 홍록색 당꼬바지의 차림새들이 이마 위로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내린 그의 허옇게 센 머리털과 함께 사내의 모습을 더욱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있었는데, 그의 그런 차림새나 센 머리털과 함께 사내의 모습을 더욱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있었는데, 그의 그런 차림새나 센 머리털의 지치고 무기력한 느낌은 사내가 쌍 사람들의 망각 속에 교도소 안에 서 훌쩍 흘려 보내버린 그 무위한 세월의 두께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알다시피 사내에겐 물론 동행이 없었다. 그는 함께 출감한 동료 수감자는 물론, 그의 출감 을 맞아주는 가족이나 친지 한 사람 동행자가 없었다. 그의 출감길에 동행이 되어주고 있는 것은 오직 공원 숲 위에서 방금 낙조를 서두르고 있는 저녁 햇살이 지어 준 그 자신의 길다 란 그림자뿐이었다. 그는 마침 그 낙조를 서두르고 잇는 공원숲 쪽의 저녁해를 향해 교도 소 길목을 걸어나오고 있었으므로 그의 그림자가 등뒤로 길게 끌리고 있었는데, 사내의 좀 구부정한 걸음걸이는 마치 사내 자신이 아니라 그 그림자를 방금 교도소로부터 끌어내어 어깨에 짊어지고 그 길을 무겁게 걸어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나 사내는 이미 출기가 가버린 낙조의 가을 햇살마저 눈에 그리 익숙치가 못한 듯 이따금씩 콧잔등을 가볍게 실룩거리며 걸음을 조금씩 지체하곤 하였는데, 바로 그 눈앞을 가로막는 햇살이나 그 햇살에 대한 어떤 부끄러움 때 사내가 교도소 길목으로부터 자신의 그림자를 짊어져 내는 일은 더욱 더 피곤하고 힘겨운 일처럼 보이게 하였다.
하지만 사내의 표정이나 걸음걸이에 어떤 변화가 이는 것은 오직 그 풀기 잃은 저녁 햇살 이 그의 눈앞을 방해해 올 때뿐이었다. 햇빛 앞에서 자신을 망설일 때 이외엔 그의 표정이 나 발걸음에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사내는 그런 표정, 그런 모습으로 조심스러워 보일 만큼 천천히, 그리고 그 구부정하고 변화 없는 걸음걸이로 교도소 길목을 걸어나오고 있었다.
변화 없던 사내의 얼굴에 비로소 어떤 심상찮은 표정이 떠오른 것은 그가 그 2백여 미터 남짓한 교도소 길목을 빠져나와 공원 입구께에까지 닿았을 때였다.
새들은 하늘과 숲이 그립습니다.
공원 입구의 오른쪽으로 한 작은 가겟집이 비켜 앉아 있고 그 가겟집 부근의 벚나무 가지들에 크고 작은 새장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벚나무 가지들 중의 몇 곳에 그 런 비슷한 광고문구가 씌인 현수막이 이리저리 내걸려 있었다.
새들에게 날을 자유를 베풉시다.
자비로운 방생은 당신의 자유로 보답 받게 됩니다.
새장의 새를 사서 제 보금자리로 날려보내게 해주는 이른바 방생의 집이었다.
사내는 비로소 긴 망각의 골목을 벗어져 나온 듯 거기서 문득 발길을 머물러 섰다. 그리 고는 어떤 깊은 반가움과 안도감에 젖으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대었다. 사내의 그 마르고 지친 얼굴 위로는 잠시 어떤 희미한 미소 같은 것이 솟아 번지기까지 하였다.
사내는 이윽고 다시 고개를 돌려 그가 걸어나온 교도소 길목을 조심스럽게 한번 건너다보고 나서는 그 방생의 집 쪽으로 길을 건너갔다.
마침 그때 그 길 건너 가겟집에서는 공원을 찾아온 중년의 사내 한 사람이 흥정을 한 건 끝내가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