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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生奇遇傳 - 申光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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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생기우전(何生奇遇傳) / 신광한
■ 핵심정리
▲ 주제 : 혼사 장애의 극복을 통한 애정의 성취 과정과 입신과 현달의 욕망 성취 과정(해피엔딩)
▲ 성격 : 염정적, 전기적(傳奇的)이며 유교적(소설 속에서 비록 주인공 하생은 전기적 경험을 하고는 있지만 그의 신분은 儒學生이며, 초월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로 복사가 등장하지만 그의 점괘는 모두 유학자들의 경전인 ≪易經≫에 근거한 것임. 게다가 2차 혼사장애가 수반될 때에 여인은 시중인 아버지에게 ≪孟子․告子≫에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이용하여 설득하기도 한다.) 적선적악(積善積惡)이라는 복선화음(福善禍淫)의 사상적 배경(하생과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의 이름을 각각 ‘積善’과 ‘餘慶’이라고 명명)
선풍은 어버이의 과실이 작은 것이요, 소변은 어버이의 과실이 큰 것이니, 어버이의 과실이 큰데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욱 소원해지는 것이요, 어버이의 과실이 작은데도 원망한다면 이는 기할 수 없는 것이니, 더욱 소원함도 불효요, 기할 수 없음도 또한 불효이다.
▲ 인물
ㅁ  하생 : 1)애정 및 출세의 욕망을 지닌 인물. 장가도 갈 수 없는 현실에 처해 있지만 재주가 남다른 데가 있는 인물로, 傳奇小說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전형적인 모습. <주생전(周生傳)>에서의 주생,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의 박생, 그리고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 나오는 양생(梁生)과 같은 처지의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하생은 이들 주생이나 박생, 그리고 양생과는 다르게 현세적 욕망-출세욕으로 가득 찬 인물로 태학에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면서도 금의환향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진다.
나는 위로 부모도 없고 아래로 처자식도 없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너희에게 이것저것  많은 말을 하겠느냐? 옛날에 종군은 비단 신표를 버렸고 상여는 기둥에다 결심을 적었으니, 약관에 모두 큰 뜻을 품은 자들이었다. 내 비록 못났으나 그 둘의 사람됨을 자못 우러르고 있다. 뒷날 출세하여 돌아와서 너희들의 영광이 될 것이니, 해오던 일을 지켜 실추됨이 없으면 다행이겠다.
2)정치의 타락 및 과거시험의 불공정성으로 인해 그의 의지와 재주를 펼칠 수 없게 됨. ⇒ 화복(禍福)에 관해 점을 칠 결심(‘점’의 의미 : 인간의 미래와 운명에 대한 관심인 동시에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한 형태)
3)유생 하생이 복사(卜師)를 찾을 정도라면 이미 하생은 儒家 본연의 現實的이며 유가적인 방법을 넘어서 초월적 존재의 힘에 의존하려는 결심을 한 것임. 상황이 비슷한 주생의 경우는 몇 년 동안 과거에 낙방하자,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미미한 티끌이 연약한 풀에 깃들어 있는 것과 같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공명에 구속되고 속세에 매몰되어 인생을 보내리요”
라고 하면서 과거를 포기하고 장삿길로 나서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周生傳>은 주생이 과거 시험에 대해 깊이 회의하며 기존의 인생관으로부터 변화하려는 시도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에 비해 하생의 경우에는 인생관의 변화나 과거시험에 대한 어떤 회의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뜻을 펴지 못하는 불행한 선비일 뿐이다. 재주는 있지만 세상 형편이 따라주지 않는 懷才不遇之士 하생의 현세적 출세 욕망은 그만큼 더 간절했으며, 하생은 그 욕망의 좌절을 占卜이라는 또 다른 방법을 통해서 극복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는 어릴 적부터 才名을 자부하여 國賓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늘 谷鸎의 시를 노래하고 陳良의 학문을 비루하게 여기며, 높은 벼슬자리도 내가 원하면 오를 수 있고, 功業도 하나하나 다 이룰 수 있다는 망령된 생각을 하면서, 부귀는 하늘에 매인 것이고 길흉은 사람에게 달렸다는 것을 몰랐는데, 오늘 점쟁이의 말을 듣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4) 처녀의 부모가 결혼 반대 : 여인이 자기와의 약속을 저버렸다고 원망 (혼사 장애 대처가 소극적임)
泥雖點玉應無汚  진흙은 비록 옥에 묻더라도 응당 더러워짐이 없으리 
鳳已歸巢肯顧鸞  봉황은 이미 둥주리로 돌아와 난새 돌아보기를 즐기도다. 
臂上淚痕紅未滅  팔 위의 눈물 흔적 붉은 기도 가시지 않았는데 
只今還作夢中看  다만 지금은 도리어 꿈 속에 본 것이 되었도다.
ㅁ  복사(卜師) : 복사(卜師)는 인간으로 등장하지만 작품의 내용상 초월적 능력을 가지고 천상계의 질서에 의해 정해지는 인간의 운명을 하생과 유인(幽人)에게 예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원조자(援助者)에 해당한다. 비록 복사는 금전(金錢)을 대가로 받고 점괘를 하생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부귀하게 될 운명을 예언해서 하생과 유인(幽人, 女鬼)이 결연하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보조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복사(卜師)는 하생이 출세장애를 인식하는 부분에서 한 번만 등장할 뿐이다. 복사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옥황상제와 무관치 않은 초월적 존재라는 점은 옥황상제의 명에 의해 삼일만 가화여귀(假化女鬼)가 된 여인에게도 복사(卜師)의 예언(豫言)이 전달되었다는 여인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저도 점쟁이의 말을 믿고 액땜(度厄)을 하려고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방이 누추하지만 하룻밤 잘 지내기 바랍니다.
卜師는 천상적 권능을 지닌 옥황상제와 하생, 그리고 옥황상제와 幽人(여귀) 사이에서 천상적 질서와 권능을 하생과 幽人에게 전달하는 중개자적 인물로 등장하여 하생과 유인의 전기적이며 비현실적인 결연을 성사시키는 援助者이다. 그리고, 작품의 結尾인 “生定婚之日 求前之卜師 則已易其肆云”라는 말 또한 인간으로 등장했지만 초월적 능력을 지닌 복사에 대한 신비감을 보여주는 부분인 것이다. 
▲ 구성 (순차식 구성)
① 고려시대에 平原 땅에서 집안이 가난하고 조실부모하여 장가도 들지 못하고 사는 何生은 용모가 준수하고 행실이 좋으며 재주가 남달라 고을의 많은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② 고을 수령에게 뽑혀 太學에 갔으나 유능함에도 불구하고 조정이 어지러운 탓에 등용되지 못하고 울적하게 지내고 있었다.
③ 하루는 스스로  아끼던 金錢을 가지고  駱駝橋에 있는 卜師를 찾아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점괘(明夷之家人)를 얻는다.
④ 도성 남문에서 헤매다가 복사의 예언대로 아름다운 小屋에서 미인(女鬼)을 만나 雲雨之情을 나눈다.
⑤ 여인은 자신이 귀신이라는 사실과 함께 죽은 이유를 밝히고, 하생과 평생을 약속한 후 다시 소생할 수 있는 방안을 하생에게 일러준다.
⑥ 여인과 함께 순장했던 金尺을 가지고 國都의 저자거리로 가서 큰 절 앞에 있는 돌(方石) 위에 놓으니, 이를 계기로 여인의 집 비복들에게 도둑으로 포박당하여 여인의 부모와 만나게 되었다. 
⑦ 여인의 부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오해를 풀어주고, 여인의 부모는 무덤으로 가서 무덤을 파헤치니 여인이 소생했다.
⑧ 신분상 집안이 맞지 않는데다가 일이 虛誕하다는 이유로, 여인의 부모에 의해 하생과 여인의 결혼에 장애가 발생했다.
⑨ 여인은 食飮을 폐하고 待罪하며 부모를 설득하여 결혼을 허락 받았다.
⑩ 부부가 되어 서로 공경하며 사십여 년을 함께 살았다.
⑪ 하생의 벼슬이 尙書令에까지 이르렀다.
⑫ 두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를 積善이라 하고 둘째를 餘慶이라 했으며 모두 세상에 이름을 드러냈다.
⑬ 혼인을 정한 날에 하생이 卜師를 찾아 갔으나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고 한다.
⇒ 이와 같이 작품의 인물들에 의해 수행된 서사내용을 13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단락①과 단락②는 작품에 등장하는 하생이란 인물에 대한 대체적인 상황을 알려준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하생은 단락③에서와 같이 복사에게 그의 운명에 대한 점을 치게 한다. 이후 점복에 의해 이야기의 진행이 가속화되고 소설 전체에 걸쳐 점복 모티프가 이야기 바탕에 놓이게 된다. 얻어진 점괘대로 하생은 미인과 결연하며 人鬼와 交媾하고(단락④), 人鬼는 소생하는 방식(단락⑦)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소설을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人鬼交媾 모티프나 재생 모티프 등이 다양하게 구사되어 서사적 흥미와 더불어 전기적 성격을 배가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생과 여인의 결합은 이로써 완성된 것이 아니라 또 한 번의 혼사장애가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즉, 여인의 아버지에 의한 혼사장애(단락⑧)가 그것인데, 이를 통해서 그들 남녀는 사랑을 재확인하게 된다.
▲ 화소 : 인귀(人鬼)교환(交換) 설화, 재생 설화, 혼사장애 모티프, 출세 장애 모티프(사회구조적 원인으로 인한 장애), 점복(占卜) 모티프, 신물(信物) 모티프(금자), 염정설화
▲ 인물 간 관계 및 욕망 구조
옥황상제는 절대 권능을 가지고 절대 질서에 의해 천상계과 인간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주인공 하생은 당초 출세에 대한 욕망과 그에 따른 좌절 속에서 또 다른 운명을 유인과의 전기적 결연을 통해서 맞이하여 애정 욕망을 아울러 보여주는 인물이다. 또한, 시중(侍中)인 아버지의 악업에 의해 이미 죽은 다섯 형제처럼 원통하게 죽은 유인(여인)은 소생(蘇生)과 애정 욕망에 대해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이고, 여인의 부모는 세속적인 욕망에 의해 악업을 쌓아 모든 자식을 원사시키고 급기야 하생과 소생한 여인 사이의 결혼에 장애를 주는 인물로 드러난다. 복사는 이들의 서로 같고 다른 욕망과 의지 사이에서 이야기의 얽힌 매듭을 풀어 주는 중개자이며 원조자이다. 한편, 유인은 그림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계와 천상계라는 두 세계의 중간에서 인간으로 소생을 바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유인은 복사를 통해서 천상계의 질서를 암시받기도 하지만(ⓒ의 역할) 옥황상제와 직접 교통할 수 있다는 점(ⓑ의 역할)에서 인간 하생과 구별된다.  
그러므로 그림에서와 같이 인간의 운명과 삶의 질서를 관장하는 옥황상제(절대질서)와 주인공 하생 사이에 복사가 하생의 운명에 대한 예언자적 중개자로 존재한다.(ⓐ의 역할) 복사는 주인공 하생의 입장에서는 원조자에 해당한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유인에게도 복사는 하생과의 결연에 관한 예언을 했는데 이를 그림에서는 역할ⓒ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유인(가화여인)에게도 복사는 원조자로 존재한다. 이와 같이 <何生奇遇傳>에서 복사는 운명을 주관하는 옥황상제와 하생․유인 사이의 중개자이며, 주인공 하생과 유인의 삶과 결연을 도와주는 원조자로서의 기능을 하는 인물에 해당한다.
  1차 혼사장애 Ⓓ(사랑하는 남녀가 현실계와 비현실계라는 서로 다른 공간으로 분리된 상황으로 인하여 생긴 장애로서 유인이 소생하여 현실계(인간계)로 오기까지의 과정)는 죽은 사람이 소생하는 비현실적이고 초월적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 초월적 공간에 의해 발생한 장애다. 이것은 결국 하생의 이원적 세계관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何生奇遇傳>을 전기적 성격(傳奇的 性格)의 소설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2차 혼사장애를 나타낸 Ⓔ는 여인이 다시 인간으로 소생한 이후 시중인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서 생긴 장애다. 여인의 아버지가 문제 삼는 것은 집안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과 하생과 여인의 결연이 허탄하다는 것,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괴상히 여길까 두렵다는 것이다
▲ 타 작품과의 비교
  ㉠ 영영전<想思洞記> : 혼사장애 모티프 나타남. 소설의 주제적 방향이 시종일관 애정장애과 그 극복의 과정으로 진행되어 주인공 김생과 영영의 애정성취에 주제가 귀착. 김생이 영영과 재회한 이후 장원급제하여 얻은 공명을 버리고 영영과 함께 생을 마치는 애정지상주의를 보임. (하생기우전에서는 혼사를 통해 공명을 얻게 됨)
  ㉡ 왕경룡전<王景龍傳> : 아버지 위공(魏公)의 명으로 빌려준 은 수만 냥을 받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것을 받아 돌아오는 도중에 옥단과 사랑에 빠져 겪는 애정장애를 주제화 시키고 있음.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왕경룡은 옥단을 본처로 삼으려 하지만 옥단이 이를 사양하고 스스로 첩이 되어 화목과 행복을 함께 도모하고 왕경룡과 그 후손도 현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 (혼사장애 극복하고 애정을 성취하는 점과 인간의 세속적 욕망인 입신과 현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王景龍傳>은 하생기우전과 유사, 그러나 출세장애 모티프가 왕경룡전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
㉢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 주인공 박생 또한 <하생기우전>의 하생과 마찬가지로 재자가인형임. 하생과 유사한 출세 장애 모티프 나타남.(박생이 태학에 추천생으로 응시했으나 불행히 합격하지 않아 불쾌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점). 다만 남염부주지는 작가(김시습)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서정성을 제거하였으며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시적 문체를 거세하였음. 매월당의 종교관, 국가관, 세계관 등의 사상을 압축하고 있는 대표적 사상소설. 하생기우전의 염정 모티프가 제게되어 있음. 작가 김시습의 현실적 소외감을 비현실적 세계와의 교섭으로 대리 만족하는 유형임.
㉣ 주생전 : 상황이 비슷한 주생의 경우는 몇 년 동안 과거에 낙방하자,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미미한 티끌이 연약한 풀에 깃들어 있는 것과 같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공명에 구속되고 속세에 매몰되어 인생을 보내리요”
라고 하면서 과거를 포기하고 장삿길로 나서게 됨. <周生傳(주생전)>은 주생이 과거 시험에 대해 깊이 회의하며 기존의 인생관으로부터 변화하려는 시도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에 비해 하생의 경우에는 인생관의 변화나 과거시험에 대한 어떤 회의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뜻을 펴지 못하는 불행한 선비일 뿐. 재주는 있지만 세상 형편이 따라주지 않는 회재불우지사(懷才不遇之士) 하생의 현세적 출세 욕망은 그만큼 더 간절했으며, 하생은 그 욕망의 좌절을 점복(占卜)이라는 또 다른 방법을 통해서 극복
▲ 출전 : 기재기이
ㅁ  신광한의 기재기이
①「안빙몽유록」-「서재야회록」,「최생우진기」,「하생기우전」등 네 편의 작품 수록 
② 네편의 작품 
「안빙몽유록」- 꽃을 의인화한 작품. 몽유록계. 기묘사화 
「서재야회록」 - 벼루, 먹, 종이, 붓의 문방사우를 의인화한 작품. 가전체 전통을 이음 
「최생우진기」- 강릉 사람인 최생의 이야기. 용궁부연록(몽유구조)과 비교(용궁체험) 
「하생기우전」 - 고려 때 하생이라는 사람의 이야기. 만복사저포기가 연결(죽은 여인과의 결연, 신물을 통한 여인의 부모와의 만남) 
③ 금오신화에 비해 문제의식이 약화되고 비현실계와의 교섭이 일회성을 띠며 교술성이 강화되고 서사적 긴장이 결여. 
④ 극적 긴장을 유지한 내적 형식의 창출에 실패. 
⑤ 전기소설, 몽유록, 가전체 등의 요소가 두루 원용
 
 
 
【 하생기우전 】
고려조에 하생(何生)이란 사람이 있어 평원(平原)에 살았다. 집안이 대대로 한미한데다 일찍 부모를 잃었다. 장가들려 하나 청혼하는 곳이 없었고 궁핍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풍도와 거동이 매우 뛰어나고 재주와 생각도 뛰어나, 마을에서는 그의 어짐을 칭찬하는 이가 많았다. 고을의 수령이 그 명성을 듣고 뽑아 태학(太學)에 맡겼다. 선비는 장차 단정히 차리고 서울로 올라가려는데 출발에 임하여 비복(婢僕)에게 말했다.
「나는 위로 부모도 없고 아래로 처자도 없다. 그러니 무엇때문에 너희들에게 이것저것 많은 말을 하겠느냐? 옛날 종군(從軍)은 신표를 버렸고, 사마상여는 기둥에 글을 써서 약관에 모두 큰 뜻을 가졌었다. 내가 비록 둔하고 부족하나, 둘의 사람됨을 경모하고 있다. 다른 날 금의환향하여 돌아와 너희들을 영광스럽게 할 것이니, 가업을 잘 지켜 실추되지 않게 하길 바란다.」
국학에 이르러 여러 선비와 재주를 겨루니 어떤 이도 앞설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하생은 장원급제하여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고 오만하게 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높은 뜻을 가졌으나, 당시 조정의 정치는 이미 어지러웠고 과거시험도 또한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럭저럭 사오 년 학사(學舍)에서 억울함을 안고 항상 못마땅해 즐겁지 않았다. 하루는 같은 학사의 선비에게 말했다.
「채택(蔡澤)도 알지 못하는 것은 목숨이라. 당생(唐生)을 따라 결정하였소. 내가 듣건대 낙타교 곁에 점장이가 있는데 사람의 장수함과 요절함, 재앙과 복록을 말한다고 하오. 날짜를 작정해 장차 나아가 점을 쳐 의혹을 해결하겠소.」
드디어 자기 집으로 돌아와 상자 속을 뒤져 간직했던 보배와 금전 몇 냥을 얻어서는 품고 갔다.
점장이는 말했다.
「부유함과 존귀함은 공께서 본뒤 가진 바이나, 다만 오늘이 매우 길하지 못하오. 점은 명이괘(明夷卦)가 가인괘(家人卦)로 감을 얻었소. 명이괘는 밝음이 땅으로 들어가는 상이고, 가인괘는 세상을 피해 한가히 사는 사람의 곧은 지조를 만남이니 이롭소. 국도(國都)의 암문을 나가 빨리 뛰어 날이 저물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음이 옳소. 단지 재앙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또한 아름다운 짝을 얻으리다.」
하생은 그 뜻에 미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일어나 작별하고는 인하여 국도 남문으로 나갔다. 가을 산은 가히 아름다웠고 뜻에 따라 길을 가던 바 해가 이미 저물어 어두운 것도 깨닫지 못했다. 사방을 돌아보니 인적이 끊어져 의탁해 잘 곳도 없었고 허기와 고단함도 또한 밀려왔다. 길 곁을 배회하는데 때는 팔월 십팔일이었다. 산에 달은 아직 뜨지 않았는데 멀리 나무 속을 바라보니 등불 하나가 별빛처럼 깜빡였다. 생각에 사람의 집이 있으려니 하고 길을 찾아 앞으로 갔다. 싸늘한 안개는 풀에 엉기고 내린 이슬은 촉촉했다. 그곳에 이르니 달 또한 밝았다. 바라보니 작고 화려한 집 하나가 있는데, 그림같은 본채가 담장 밖으로 높이 솟았고, 사창 안에는 촛불 그림자가 푸르게 빛났다. 바깥 문은 반쯤 열렸는데, 조금도 사람의 자취는 없었다. 선비는 이상해 하며 가만히 들어가 엿보니 나이가 열 여섯 살쯤 되는 미인이 있었다. 각진 베개에 의지하여 반쯤 비단 이불에 가리운, 근심스런 얼굴에 고운 태도는 눈으로 바로 응시하기 어려웠다. 이에 턱을 괴고 크게 탄식하더니, 가늘게 두 절구를 읊었다.
향로에 연기 다하고 동방은 닫혔는데
한가로운 근심에 뜻없이 원앙을 수놓도다.
편지 한 번 끊어지니 가을하늘 싸늘하고
지는 달 아름다이 대들보를 비추도다.
분갑에는 먼지 날고 구리거울은 녹슬어
꿈속에 만난 님 잠깨니 허황하도다.
비단 휘장의 밤은 깊어 기러기가 이르고,
늙은 홰나무, 성긴 버들에 밝은 달이 비추도다.
시의 뜻을 본즉 수자리 사는 이의 아내 같고, 용모와 행동이 또한 귀한 집 처녀와 같았다. 지키는 자가 있을까 겁내고 떨며 물러나려다가 발소리가 저벅저벅 하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미인은 시녀를 불러 말했다.
「금환아! 옥환아! 창 밖에 저벅저벅 소리 내는 자가 누구냐?」
두 시녀가 함께 대답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바야흐로 선잠이 들었습니다. 뒷 마루 창밖에 달이 밝을 뿐 또 누가 있겠습니까?」
미녀는 가느다란 어조로 말했다.
「어젯밤에 아름다운 꿈이 있어, 진정 너에게 말했었다. 이는 좋은 선비가 옴이 아니냐?」
인하여 서로 함께 농담하며 웃었다. 선비는 어렴풋이 그 소리를 듣고 또 점장이의 말이 생각나서 마음 속으로 스스롤 기뻐하고는 드디어 문을 두드리고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곧 두 시녀가 문을 밀치고 대답하여 말했다.
「산에 있는 집이고 밤도 깊은데, 손님은 무엇하는 사람이시오?」
선비는 말했다.
「나는 봄을 찾는 최호(崔護) 술에 목말라 음료수를 구함이 아니고 홀로 가다가 길을 잃었을 뿐이오. 하룻밤 유숙을 부탁하오.」
시녀는 혀를 차면서 말하기를,
「이곳은 작은 낭자가 홀로 우거하는 곳이니 진실로 손님이 잘 곳은 아닙니다.」
하고는 곧 문을 잠그고 들어갔다.
선비는 마음이 미혹되고 생각이 짧아 망연히 넋을 잃고, 문에 기대 방황할 뿐이었다. 밤이 오래되자 홀연 문이 철컥 열리는 소리에 놀랐는데 앞의 시녀가 문을 열며 말했다.
「낭자께서는 손님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아시고서, 말하기를 “산에 승낭이 호랑이가 많고 사방에 이웃도 없다. 곤궁하기에 와서 의탁했는데 거절하면 상서롭지 못하다.”하시고, 사랑방에 거처토록 허락하셨습니다. 손님께서는 들어와 유숙하십시오.」
선비는 절해 사례하고 머물 곳으로 나아갔다. 깨끗한 방은 꾸밈이 없어 자연스러웠고 잠자리도 곱고 아름다웠다. 방안에는 황금 빛 주렴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옥돌로 된 벼루와 채색 붓과 꽃무늬 종이 몇 폭이 있었고, 곁에는 은 항아리와 향을 먹인 기름과 향로가 있어 연기가 그윽하게 빛나며 향기롭고, 또 제공하는 술과 음식도 극히 향기롭고 깨끗했다. 시녀는 조금 뒤 주인 낭자의 명령으로 와서 물었다.
「과부의 거처라 외지고 누추합니다. 손님은 무슨 연고로 여기에 이르렀습니까?」
하생은 방안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헤아리고는 여자의 뜻을 시험하고자 하며 이에 답했다.
「소생은 일찍이 재주와 명성에 힘입어 국빈(國賓)으로 성균관에 들어갔습니다. 항상 곡앵시(谷鸎詩)를 읊고, 늘 진량(陳良)의 학문을 비루하게 여겼습니다. 망령되이 출세에 뜻을 두고 고위직을 얻을 수 있다 여기며 공로를 가리켜 취할 수 있다 하고는, 부유함과 존귀함이 하늘에 있으며 길함과 흉함이 사람에게 말미암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지나다 들은 점장이의 말로 마침내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아울러 점장이의 말을 고했다. 시녀는 말을 듣고 갔다가 웃으면서 돌아와서는 다시 말했다.
「연약한 저도 또한 점장이의 말을 믿고 재액을 면하러 여기에 왔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방이 비록 누추하나 청컨대 하룻밤 유숙함이 좋겠습니다.」
하생은 그 말이 더욱 이상해 궁금함을 견딜 수 없었다. 즉시 책상 위의 꽃무늬 종이를 가져다 단편 시 두 장을 써서 시녀에게 부치며 말했다.
「방을 빌리고 이미 은밀한 정의 많음이 이와 같으니 입으로 진술해 사례하기 어렵소.」
하고는 시에 이르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맑고 맑은 은하수 그림자는 반이나 비꼈고
비단 발 무겁게 내려 구름을 가린 병풍이로다.
직녀의 베틀 곁 지남을 싫어하지 않으니,
도리어 엄군평이 객성 알아봄을 괴이해 하도다.
향기로운 기운은 끊임없고 구름은 비로소 흩어지는데
아름다운 절개 드높이나 봉황이 중매하지 않도다.
애끊는 하룻 밤 외로운 베개의 꿈
문득 양대에 이르러 길 없음을 안타까워 하노라.
시녀가 가지고 간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꽃무늬 종이를 가지고 와서 하생 앞에 내놓았다. 바로 주인 낭자가 화답한 것이었다. 그 시에는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원앙침을 베고서
활짝핀 꽃을 꺾어 가득 머리에 꽂는 꿈을 꾸었다오.
시녀와 함께 마음 속의 일을 말하고
화장 경대를 보려고 하니 문득 부끄러움만 생긴다오.
달을 기다리려 열린 창을 밤에도 닫지 않았는데
조롱의 앵무새는 잠을 비로소 이루도다.
잎은 아름다이 떨어져 마음을 울리니
흡사 정이 없는 듯하나 다시 정이 있다오.
하생은 시를 읽고 비록 여자의 뜻을 알았으나, 미덥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했다. 여자의 방을 보니 가까운데다 또 닫히지도 않았고, 시녀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엔 오로지 방안에서 배회할 듯이 하다가 걸어 드디어 나아갔다. 손을 가뿐히 하여 창을 열자 여자는 바야흐로 쓸쓸하고 근심스러이 앉아 마치 기다리는 바가 있는 듯했다. 하생은 나아가 함께 온화히 웃으며 말했다.
「어찌 듣지 않았겠습니까? 세속의 노랫말에 말하기를 “손님이 있으면 문을 빌려 유숙시키고, 밤이 깊으면 곧 집을 빌려준다. 주인은 오리를 때리지 마소. 오리를 때리면 원앙이 놀라오.”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땋은 머리를 낮추고 교태롭게 수줍어 하며 다만 말하기를,
「업보의 인연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피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때는 쇠잔한 등불이 병풍을 등지고 밝았다가 꺼지려 했다. 여인은 장차 누우려다가 하생에게 말했다.
「제가 일찍이 위소주(韋蘇州)의 시를 사랑했는데, “홀로 사는 사람 장차 자려고 띠를 풀었다가 다시 맨다.”라고 말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밤은 더욱 그 진의를 알겠습니다.」
서로 함께 즐거이 희롱하고 매우 다정함을 다했다. 밤이 장차 밝으려는데 여인은 하생의 팡를 베고 오열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생이 놀라 말했다.
「겨우 좋은 만남을 이루었는데 갑자기 그대가 이와 같음은 어째서이오?」
여인이 말했다.
「여기는 현세의 인간 세상이 아닙니다. 저는 바로 시중 아무개의 딸로 죽어서 여기에 묻힌 지 지금 이미 사흘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오랫동안 권세의 요직에 있으면서 눈흘김에 남을 얽어 상해함이 매우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다섯 아들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다섯 오라비는 모두 아버님보다 앞서 요절했고, 제가 홀로 곁에 있다가 지금 또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상제께서 저를 불러 명령에 말하기를 “네 아비는 조금 뒤에 큰 옥사에 국문을 받을 것이고 죄없는 수십 명은 살아날 것이다. 지난날 남을 얽어 상해한 죄를 속죄할 수는 있으나, 다섯 아들은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어 보낼 수 없겠고, 마땅히 너를 보내 돌아가게 하리라.”하여 저는 절하고 물러났는데, 기한이 다음날 새벽까지이므로, 이를 지나면 다시금 깨어날 가망이 없었습니다. 지금 낭군을 만났으니 이 또한 운명입니다. 길이 의탁해 좋아하며 끝까지 수건과 빗을 받들고자 하오나, 허락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생도 또한 울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응당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하겠소.」
여인이 이에 베갯머리에서 금척(金尺) 하나를 꺼내 주며 말했다.
「낭군께서는 이것을 가지고 가서 국도의 저자거리 큰 절 앞에 있는 하마석 위에다 올려놓으십시오. 반드시 알아보는 자가 있을 겁니다. 비록 곤욕을 당하더라도 제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생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여인이 하생에게 빨리 일어나 떠날 것을 재촉했다. 드디어 손을 맞잡고 이별하며 시 한 구절을 읋어 하생을 배웅했다.
산꽃이 갓 떨어지고 새소리 정답더니
봄소식이 무단히 어둠 속에도 돌아왔네.
한 번 생명을 맡겨 은의가 주앟게 되었으니
어서 금척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나가시오.
하생도 한 구절을 읋어 이별을 하고 또 여인의 뜻을 다짐했다.
꽃은 비단 장막 속에 있고 푸른 구름이 잠겼는데
노니는 벌 찾아드는 걸 또 허락하시려오.
분명한 소매 속의 황금 자를 가지고
인정의 깊고 얕음을 재어보고 싶어라.
여인이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첩이 창류(倡類)가 아닌데 어찌 이토록 박하게 대하십니까? 나가시는 길이나 잘 살펴가시고 제 마음이 변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생이 문을 나와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바로 새로 쓴 무덤만 하나 있었다. 슬픈 마음으로 눈물을 닦으며 돌아와서 큰 절 앞에 이르니, 과연 네모난 반석이 하나 있었다. 금척을 꺼내 돌 위에 올려 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 있게 보는 이가 없었다.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소복 차림을 한 세 여인이 시장을 나왔다가 지나가더니, 뒤에 가던 한 여인이 금척을 발견하고는 반석 주위를 세 번 돌고 돌아갔다.
얼마쯤 지나서 그 여인이 건장한 노복 몇 명을 데리고 와서는 하생을 잡아 묶고는 말했다.
「이것은 작은 아씨 무덤에 순장하였던 물건이다. 너는 묘도둑이구나.」
하생은 무덤 속 여인의 부탁도 있고 사랑하는 마음도 핑은지라 고개를 숙이고 욕을 당하면서도 감히 입을 열지 않았다. 보는 자들이 모두 침을 뱉으며 더럽게 여겼다. 그 집으로 끌고 가서 하생을 뜰 아래에 묶어 놓았다. 시중이 오궤(烏几)에 기대어 청사(廳事)에 앉아 있고 자리 뒤에는 주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시녀들이 수십 명 둘러 모여 있는데 서로 보려고 밀치면서 말했다.
「생긴 것은 선비처럼 생겼는데 행실은 도적이구먼.」
시중이 금척을 가져다가 알아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과연 내 딸의 무덤에 순장했던 금척이다.」
주렴 안에서 흑흑 울음소리가 들렸고 시녀들도 모두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시중이 손을 저어 그치게 하고 하생에게 물었다.
「너는 뭐하는 사람이며 이 물건은 어디서 났느냐?」
하생이 대답하였다.
「저는 태학생이고 이것은 무덤 안에서 얻었습니다.」
시중이 말했다.
「네가 입으로는 시(詩)와 예(禮)를 말하면서 행실이 무덤이나 파는 도적과 같으니 될 말인가?」
하생이 웃으며 말했다.
「제 결박을 풀고 가까이 가게 해주십시오.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대인께서는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셔야지 도리어 화를 내시면 되겠습니까?」
시중이 즉시 결박을 풀게 하고 뜰 위로 오르게 하니, 하생은 드디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 주었다. 시중이 부끄러운 얼굴로 한참 있다가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비복들이 서로 돌아보며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주렴 안에서 흐느끼며 말했다.
「일이 헤아리기 어려우니 확인해보고 죄를 주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서생이 하는 말을 들으니 우리 딸이 살았을 적 용모나 복장과 똑같습니다. 필시 틀림없을 것입니다.」
시중이 말했다.
「그래. 즉시 삼태기와 삽을 준비하고 가마를 갖추어라. 내 직접 가보겠다.」
노비 몇 명을 남겨 하생을 지키게 하고 무덤으로 갔다.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이에 이상히 여겨 파보았다. 여인은 얼굴빛이 살아 있는 것과 같았고 가슴에는 따스한 기운이 조금 있었다.
유모 할미를 시켜 싸안고 수레에 태워 돌아왔다. 의원을 부를 겨를도 없어서 요동되지 않게 가만히 놓아두었는데, 해가 저물 무렵 바야흐로 깨어났다. 부모를 보고 가늘게 흐느끼더니, 조금씩 안정이 되었다. 부모가 물어보았다.
「네가 죽은 뒤 무슨 이상한 일이 있었더냐?」
여인이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저는 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죽음이었습니까? 이상한 일은 없었습니다.」
부모가 굳이 물으니 여인이 비로소 말을 하는데, 하생이 했던 말과 꼭 들어맞았다. 온 집안 사람들이 무릎을 치며 놀라워했다. 이렇게 되자 하생에 대한 대우가 퍽 좋아졌다.
며칠이 지나 여인이 건강을 회복하였다. 시중이 성대한 잔치를 열어 하생을 위로하고 이어 집안 형편이며 장가를 들었는지 물었다. 하생은 장가는 아직 들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평원(平原) 고을의 교생(校生)이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시중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가 부인과 의논하더니 말했다.
「하생은 용모와 기개로 보아 실로 보통 사람이 아니니, 사위로 삼는 데 있어 무슴 망설일 게 있겠소? 다만 집안이 우리와는 맞지 않고 일도 또한 꿈같이 허탄하니, 이번 일로 해서 그와 혼사를 이룬다면 세상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길까 염려되오. 내 생각으로는 많은 답례품을 주어서 보답하는 것이 좋겠소.」
부인이 말했다.
「이 일은 대인(大人)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니, 부녀자가 어찌 간여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는 다시 잔치를 열고 하생을 위안하였는데, 하생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으면서 혼인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하생은 분한 마음으로 처소로 돌아와서 가슴을 치고 속상해하며 여인이 약속을 저버린 것을 원망했다. 이어 시를 한 편 지어 여인의 유모 할미에게 부탁하여 여인에게 전하게 하였다.
흙탕물 옥에 묻어도 옥은 변함이 없을테고
봉황이 제 둥지를 찾았으니 난새를 돌아보려 하겠는가?
팔 위의 눈물 자국 아직도 또렷한데
다만 이제 도리어 꿈속에서나 보겠구나.
여인이 시를 보고 놀라 그 동안의 사정을 물어보고 비로소 부모가 하생을 배반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몸이 아파다고 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았다. 부모가 속으로 딸의 마음을 알고 병의 빌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딸이 울면서 말했다.
「부모를 멀리하는 것도 불효입니다만 부모의 사소한 잘못을 들추는 것도 역시 불효라고 합니다. 감히 소원하게 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잘못을 들추어 부모님께 누를 끼칠까 염려가 됩니다.」
부모가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거라. 뭇할 말이 무엇이냐?」
여인이 비녀와 귀걸이를 풀고 일어나 절하고 대죄하여 말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어, 깊은 사람 받은 막내 어여쁘게 자랐답니다. 정숙하게 집안에서 음식 솜씨 훌륭했고 저녁 문안 아침 조반 탈없이 잘 해냈답니다. 옥황상제 노여움이 악한 집에 재앙 내려. 망극하신 부모 은혜 근심으로 갚게 됐답니다. 다섯 아들 두었는데 부모 먼저 죽게 되어 죄 없는 우리 남매 무덤 덮은 가시 덩굴, 하늘은 밝으시어 덕 닦음을 다 아시고, 한 가지 착한 일로 이 몸에 은혜 내리셨지요. 혼백 돌아갈 길이 있어 지하에서 일어나서 잠 못 들고 가슴 치며 원한 맺는 긴긴 밤에, 동산 위엔 달도 밝고 반가워라 님을 만나 단단히 맺은 언약 같이 죽자 하였답니다. 담을 뚫고 지붕 뚫어 죽은 목숨 살렸으니 황천엔 길 없으나 무덤 굴엔 통로 있겠지요. 즐겁고 즐거우니, 그 즐거움 크답니다. 나무 꺾지 않으시고 이슬 길도 아니 가고, 은혜 갚을 생각하다 이에 사랑을 주었답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제부터 앞으로 복 받을 일 많이 하여 후손 편안케 하옵소서. 어찌 운명을 어기고 제 생각은 않으신지요. 끼륵끼륵 기러기 울고 아침 햇살 비쳐오니 방실방실 복사꽃은 때 놓치면 아니 된답니다. 님을 다시 만나는 것은 저의 소원, 저의 결심이랍니다. 시경 용풍 백주시는 굳은 마음 맹세한 시거니, 이럴 줄 알았다면 깨어나지 말 것을. 백주시 지은 공강이여! 귀신 되어 함께 가리.」
시중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며 말했다.
「내가 진실되지 못하고 사랑이 모자라서 너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구나.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남녀의 만남은 하늘이 정해둔 것이니 너를 위해 성사시켜 보도록 하마.」
모부인(母夫人) 역시 위로하며 달래었다. 여인은 비로소 일어나 머리 빗고 화장을 하고는 유모를 통해 하생에게 답시를 적어 보냈다.
갓 솟은 환한 달빛 산골에 가득한데
도리의 봄 마음을 나비가 이미 알았더라.
돌 위에서 맺은 원한 노랫소리 울려나니
일찍이 옥황께서 이 몸 운명 정하셨네.
시중이 듣고 “이 일은 늦출 수가 없겠구나.” 하고는 즉시 하생을 불러 혼인시킬 뜻을 전달하며 말했다.
「혼례에 쓰이는 물건을 우리가 마련하겠네.」
드디어 하생을 그의 숙소로 돌려보냈다가 날을 가려 예를 갖춰 맞아드렸다. 하생이 여인과 다시 만나 비단 장막을 치고 촛불을 밝히고 마주하니 완연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하생이 말했다.
「새로 결혼하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인데, 헤어졌던 부부가 다시 만나는 것이야 그 즐거움이 어떠 하겠소? 나와 그대는 새 즐거움과 옛 정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니, 세상의 많고 많은 부부 가운데 우리와 같은 자가 누가 있겠소?」
여인이 말했다.
「일찍이 들으니 불가(佛家)에 삼생설(三生說)이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가 바로 이것이랍니다. 과거에 이미 낭군과 더불어 부부가 되었고 현재 또 낭군과 더불어 부부가 되었는데 다만 미래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삼생의 인연을 맺은 일이 예전에도 있었습니까?」
이로부터 부부가 되어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여 비록 양홍(梁鴻)과 맹광(孟光), 극결(郤缺)과 그 아내라도 견줄 바가 못 되었다. 이듬해 하생은 대과에 합격하여 보문각(寶文閣)에서 첫 벼슬살이를 시작해서 뒤에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다. 여인과 부부가 되어 무릇 사십 여 년을 함께 살았다.
두 아들을 낳아 맏이를 적선(積善)이라 하고 둘째를 여경(餘慶)이라 하였는데, 모두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다. 하생이 혼인을 정한 날에 예전의 그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이미 자리를 옮겨 뜨고 없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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