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淑英娘子傳 - 作者不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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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화설. 조선(朝鮮) 세종대왕(世宗大王) 때, 경상도 안동 땅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성은 백(白)이었고 이름은 상군(尙君)이었다. 부인 정씨(鄭氏)와 이십 년을 동거하였으나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늘 슬퍼하였다. 명산대찰(名山大刹)에 정성을 다하여 기도한 후, 그 덕택으로 기이한 꿈을 꾼 후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가 점점 자람에 따라서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온유하며 문필이 자못 유려(流麗)하였다. 그의 부모 백상군 부부는 외아들을 천금인양 애지중지(愛之重之)하였고 이름을 선군(仙君)이라 지었다. 부부는 아들에게 알맞은 배필을 얻어서 슬하에 두고 재미를 보려고 널리 구혼을 하였으나 한 곳도 마땅한 곳이 없어서 항상 근심으로 지냈다.
이 때는 선군의 나이가 열 여섯 살 되던 때였다. 어떤 봄 날 선군이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몸이 노곤하여 책상에 기대어 졸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문득 녹의홍상(綠衣紅裳)으로 단장한 낭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두 번 절하고 옆에 앉더니,
"도련님은 저를 몰라보시겠습니까?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둘이 천상연분(天上緣分)이 있기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하였다. 이에 선군은,
"나는 진세(塵世)의 속객(俗客)이요, 낭자는 천상의 선녀(仙女)인데 어찌 우리 사이에 연분이 있다 하오?"
하고 의아하여 물었다. 그러자 낭자는,
"도련님은 본디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선관(仙官)이셨는데, 비를 그릇 내리신 죄로 인간세상으로 귀양 오셨으니 장차 저와 상봉(相逢)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선군이 기이하게 여기던 중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방안에는 선녀의 이상한 향기가 가득했다.
그 뒤로부터 선군은 그 낭자의 고운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맑은 음성이 귀에 쟁쟁(錚錚)히 남아 있어 낭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무엇을 잃은 듯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미친 것 같기도 하며 용모가 초췌해지고 안색이 곧 죽어 가는 사람처럼 안 좋게 바뀌었다. 선군의 부모가 이 아들을 보고 우려하여,
"네 병세가 심상치 않으니 무슨 소회가 있거든 숨김없이 말하거라."
하고 물었다. 선군은 대답하기를,
"별로 소회(素懷)는 없사오나 왠지 모르게 심기가 좋지 않아서 그렇사오니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하였다. 서당으로 물러 나와서 고요히 누워 오로지 낭자만 생각하고 만사에 무심히 지내노라니 이 때 홀연히 그 낭자가 나타나서 앞에 와 앉으면서 선군을 위로하기를,
"도련님이 저를 생각한 나머지 이토록 병이 되었으니, 어찌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또한 가세 빈함함이 근심되므로 제 화상과 금동자 한 쌍을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제 화상은 도련님 침실에 두고 밤이면 안고 자고, 낮에는 병풍에 걸어 두고 도련님 심회를 풀도록 하세요."
라고 하였다. 선군이 반가와 낭자의 손을 잡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에 문득 낭자는 사라져 버렸다. 잠을 깨고 보니 낭자의 화상과 금동자 한 쌍이 옆에 놓여 있었다. 선군이 기이하게 여겨서 그 금동자는 상 위에 올려 놓고, 화상은 병풍에 걸어 두고 주야(晝夜)로 한 때도 그 옆을 떠나지 않았다. 이 때 세상 사람들은 선군의 이런 소문을 듣고 신기하게 여겨, '백선군의 집에 기이한 보배가 있다.' 하고 각각 채단을 가지고 와서 주고 구경을 했다. 따라서 백선군의 집은 형편이 점점 나아져서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선군은 날이 갈수록 사모하는 이는 오직 낭자뿐이라 실로 가련하였다. 마침내 그것으로 인하여 병이 뼈 속 깊이까지 들어 백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게 되었으니 그 누가 살려낼 수 있겠는가?"
하고 선군의 꿈에 나타나서 위로하기를,
"도련님이 저를 생각하고 이처럼 병이 드셨으니 저로서는 오직 감격할 따름입니다. 저와의 연분은 아직 때가 멀었으매, 그동안 저 대신으로 도련님 댁의 시녀 매월이 도련님을 모시고 시중 들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오니 아직 방수를 정하여 저를 보는 듯이 적막한 심회를 위로하십시오."
하였다. 깨고 보니 한마당 꿈이었다. 선군이 마지 못하여 낭자의 말대로 매월이를 시첩으로 삼아서 울회를 풀기는 하되,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애정은 여전히 낭자에게 있을 뿐이었다. 달 밝은 빈산에서 내는 원숭이의 휘파람 소리와 두견새의 불여귀(不如歸)가 슬피 우는 소리에도, 낭자의 생각으로 간장이 굽이굽이 녹는 듯 하였다.
이러한 괴로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선군의 상사병은 골수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그 부모는 선군의 병이 점점 위중해 가는 것을 보고 당황하고 초초하여 백가지 문복(問卜)과 천가지 약을 쓰는 등, 갖은 방법을 다하였으나, 선군의 병이 차도가 없으므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이 때 낭자가 또 생각하기를,
"도련념의 병세가 백약이 무효하니 아무리 천정의 연분이 중하다 하여 더 기다리다가는 속절없이 되겠다."
하고 선군의 꿈에 나타나서,
"우리가 합할 시기가 아직 멀었기로 지금껏 떨어져 있었는데, 도련님이 그처럼 제 생각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시니 제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도련님이 정히 저를 보고자 하시거든 옥연동(玉淵洞)으로 찾아 오십시오."
하고 홀연히 가버렸다. 선군이 꿈을 깨고 생각하니 정신이 황홀하여 어쩔 줄을 모르다가 옥연동에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부모 앞으로 나가서,
"근일에 소자의 마음이 울적하여 침식이 불안하오니, 명산대천에 유람하여 심회를 소창(消暢)하고자 합니다. 옥연동은 산천의 경치가 매우 좋다 하오니 수삼일 동안 구경하고 돌아 오겠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부모는 깜짝 놀라며,
"네가 정말 실성(失性)한 게로구나. 그렇게 성치 못한 사람이 어떻게 문 밖을 나가겠는가?"
하고 붙들고 놓지 않았다. 선군은 소매를 뿌리치고 막무가내로 내달으니 부모는 하는 수 없이 보냈다. 백선군은 완보하여 동으로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러나 날이 저물도록 옥연동을 찾지 못하고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선군은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였다.
"밝으신 하늘을 저의 이 정상을 살피시어 옥연동 있는 곳을 인도하여 주소서."
하고, 점차로 나아갔다. 한 곳에 다다랐을 때 해가 기울고 석양이 수풀에 어리어 보였다. 산은 첩첩하여 천봉만학이요, 물은 잔잔히 흘러서 백곡(百曲)을 이루고 있었다. 못에는 연꽃이 만발하고 깊은 골짜기에는 모란꽃이 한창 피었는데, 그 사이로 나비들이 눈〔雪〕같이 분분하고, 다락 위를 나는 꾀꼬리는 편편금(片片金)이었다. 층암절벽에 걸린 폭포는 은하수를 휘어댄듯하고, 명사청계(明沙淸溪) 위에 걸린 돌다리는 오작교를 방불케 하였다. 백선군이 그런 풍경을 좌우로 바라보면서 산 속으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었다. 선군이 이런 풍경을 보자 심신이 자연 상쾌해서 우화등선(羽化登仙)한 것 같았다. 희귀한 자연에 산 모양이 빼어나고, 마음 내키는대로 그 경개에 들어가니 주란화각(珠蘭畵閣)이 구름 위 빛나는데, 금자(金子)로 현판에 '옥연동'이라고 뚜렷이 쓰여 있었다. 선군이 기쁨을 참지 못하여 곧바로 당상으로 오르니, 한 낭자가 앞에 나타나서,
"그대는 어떤 속객(俗客)인데 감히 선경을 범하였느냐?"
하고 힐문하였다.
선군이 공손하게,
"나는 유산객(遊山客)으로서 산천 풍경을 탐하다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그만 잘못하여 선경을 범하게 되었사오니 선낭은 나를 용서하십시오."
하니까, 낭자가 정색하고,
"그대는 몸을 아끼거들랑 빨리 이곳에서 물러가라."
하였다. 선군이 이 말을 듣자 낙심천만하여 생각하되,
"여기가 분명 옥연동인데 이 때를 놓치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것이니 다시 한 번 얘기해 보리라."
하고 다시 용기를 차리고, 점점 나아가 앉으며,
"낭자는 왜 나를 이렇게 괄시합니까?"
하고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 낭자는 들은 체도 않고(聽而不聞) 방으로 들어간 뒤에 다시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선군은 문득 주저하다가 하는 수 없이 당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 때 낭자가 방에서 다시 나와서 옥면화안(玉面花顔)을 환하게 하고 화란(畵欄)에 기대 서서 단순호치(丹脣皓齒)를 반쯤 열어서 미소 지으면서 조용히 백선군을 불렀다.
"낭군은 가지 말고 내 말씀을 들으시오. 낭군은 어쩌면 그렇게 눈치도 없으세요. 우리 사이에 아무리 천정연분이 있더라도 처녀의 몸으로서 어찌 그리 한마디 말(一言)로 쉽게 허락하오리까?"
하고 오르기를 청하였다. 백선군은 이 말을 듣자 전에 꿈에만 그리던 그 낭자임을 깨닫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당상으로 올라가서 앉은 후 자세히 바라보니, 낭자의 얼굴은 부상(扶桑)의 보름달이 뚜렷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는 듯하고, 태도는 금분의 모란꽃이 아침 이슬을 흡족히 머금은 듯하고, 한쌍의 눈썹은 봄 산에 비낀 듯하며, 두 개의 성모는 추화에 잠긴 듯하고,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와 같고, 첩첩한 입술은 앵무단사(鸚鵡丹沙)를 문 듯하니, 천고무쌍이요 일세 독보의 절대가인이었다. 선군은 마음이 황홀하여,
"오늘 낭자 같은 선녀를 대하니 지금 당장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하고 지금까지 그리던 정회를 고백하자 낭자가 말하기를,
"저같은 여자를 그처럼 생각하여 병까지 얻었으니 어찌 대장부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정식으로 만날 기약이 삼년이 남았습니다. 그 때가 오면 파랑새를 중매로 삼고 만나서 육례를 이루고 백년동락을 하려니와, 만일 오늘 제 몸을 낭군에게 허하면 천기(天機)를 누설한 것이 될 것이니, 낭군은 오늘 초조한 정념을 가라앉히시고, 삼 년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선군이,
"일각이 여삼추(아주 짧은 시간도 길게 느껴짐)인데, 어찌 삼 년씩이나 기다리겠소? 내가 지금 그냥 돌아가면 잔명을 부지하지 못하고 죽어서 황천객이 될테니, 낭자의 일신인들 어찌 온전하리오. 낭자는 나의 이 간절한 정상을 생각하고, 불에 든 나비와 그물에 걸린 고기 처지인 나를 구해 주시오."
하고, 온갖 사유를 들어 애걸(만단애걸)하였다. 낭자는 선군의 정상이 가긍하여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돌리며 미소를 띄우니, 옥 같은 얼굴에 희색이 무르녹았다. 선군이 낭자의 손을 잡고 침실로 가서 마침내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이루었는데, 그 마음에 굳게 맺혀 잊을 수 없는 정(권경정)은 이루 측량할 수 없었다. 이에 낭자는,
"이제 이미 제 몸이 부정해져서, 이 선경에 있을 수가 없으니 낭군과 함께 가야겠습니다."
하고 청노새를 끌어 내어 타고 선군이 배행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자연 추종하는 이가 많았다.
이 때, 선군의 양친은 아들을 내 보내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사람들을 풀어서 사방으로 그 종적을 찾았으나 옥연동에 있는 선군을 어찌 찾을 수가 있겠는가? 날이 밝자 뜻밖에 선군이 한 미인을 데리고 이르러 양친에게 뵈이고(見謁 : 현알) 인사를 여쭈었다. 어안이 벙벙한 부모가 전후 사정이 궁금해 자세히 묻자 선군이 전후 사연을 말씀드렸더니, 선군의 양친은 기뻐하며 낭자를 살펴보았다. 그 화려한 용모와 아리따운 재질이 도저히 인간으로는 없는 바라, 선군의 부모는 더욱 공경기대하여 처소를 동별당에 정해 주었다. 이리하여 선군은 낭자와 금슬지락을 누리며 일시도 서로 떨어지지 않고(수유불리) 학업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부친이 민망하게 생각하였으나, 본디 귀한 자식인 까닭으로 알고도 모른 체하고(지이부지) 내버려 두었다.
세월은 흘러서 어느덧 팔 년이 지나는 동안에 자식 남매를 두었는데, 딸의 이름은 춘앵(春鶯)으로, 나이 여덟 살이었는데 천성이 영오총민(穎悟聰敏)하였다. 아들의 이름은 동춘(東春)이라 하였는데 나이는 세 살이었다. 동춘은 기풍을 부친 닮고 모습은 모친을 닮았으며 집안에 화기가 애애하여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집안 정원 동산에 정자를 짓고, 화조월석(花朝月夕)에 젊은 부부가 정자에 왕래하며 칠현금(七絃琴)을 희롱하고 노래로 화답하여 서로 즐기며 서로 돌아보아 맑은 흥취가 도도하였다. 부모는 아들이 공부에 전혀 뜻이 없는 것을 탄식하던 차,
"너희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 틀림 없도다."
하면서도 선군을 불러,
"이번에 알성과(謁聖科)를 본다는 방이 나붙었으니 너도 꼭 응과(應科)하라. 요행히 방(榜)에 들면 네 부모도 영화롭고 조상을 빛내게 되지 않겠느냐?"
하고 선군이 과거길에 오르기를 재촉하였다. 그러자 선군이 말하기를,
"우리 집에 수천 석 전답이 있고, 비복이 천여명이며, 십리지소택(十里之沼澤)과 이목지소호(耳目之所好)를 마음대로 하는 처지인데, 무엇이 부족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아치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만일 제가 과거를 보려고 집을 떠나면 낭자와는 수개월 동안의 이별이 되겠으니 사정이 절박합니다."
하고 동별당으로 돌아와서 낭자에게 부친과 주고 받은 말을 전하였다. 그러자 낭자는 자세를 바로 하고,
"과거를 보지 않겠다는 낭군의 말씀이 그릅니다. 남아가 세상에 나면 입신양명하여 부모께 영화를 뵈어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낭군은 규중처자를 연연한 나머지 남아의 당당한 일을 폐하고자 하니, 부모에게 불효가 될뿐더러 세상 사람의 꾸지람이 마침내 저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니 낭군은 재삼 생각하여 빨리 과거 행장을 차리고 상경해서 남의 비웃음을 사지 않게 하십시오."
하고 노자를 준비하여 주면서,
"낭군이 이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낙방거사가 되어서 돌아오시면 제가 죽고 말테니 다른 잡념 다 버리고 어서 떠나십시오."
하였다. 선군이 그 말을 들으니 말마다 절절히 합당한지라 마지못하여 부모에게 하직하고 다시 낭자에게
"당신은 내가 과거를 보고 돌아올 때까지 부모를 잘 모시고 애들과 함께 기다리시오."
하고 과거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낭자와의 이별이 슬퍼서 한 걸음에 돌아서고 두 걸음에 돌아보며 연연한 정을 금하지 못하므로 낭자도 중문 밖까지 나와서 먼 길에 몸 조심 하라고 재삼 당부하면서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선군은 수심에 찬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여 발걸음이 무거워 그 날은 종일토록 삼십 리 밖에 가지 못하였다. 주막에 들려서 저녁상을 받고도 오직 낭자 생각만 간절해서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여 두어 술 뜨다가 상을 물리치니 하인이 민망히 여겨서
"식사를 그렇게 안하시면, 앞으로 천리길을 어떻게 가시렵니까?"
하니 선군이
"아무리 먹으려 해도 입맛이 없으니 어쩌겠느냐."
하였다. 선군은 적막한 주막방에 앉아 있노라니 마음이 산란하였다. 낭자가 옆에 있는 듯하되 보이지 않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되 귀를 기울이면 들리지 않았다. 바늘 밭에 앉은 것처럼 마음을 진정치 못하다가 마침내, 이경 끝에서 삼경초에 신발을 들메고 집에 돌아와 담을 넘어서 낭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을 깬 낭자가 깜짝 놀라서,
"낭군님, 이 밤중에 어쩐 일입니까. 오늘 길을 떠난 분이 다시 돌아 오셨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하니 선군이 대답하기를,
"종일토록 가다가 겨우 삼십리를 가서 숙소를 정하였으나 다만 그대 생각 뿐이라, 첩첩이 쌓인 비감한 생각을 금치 못하여 밥도 먹히지 않고 도중에서 병이 될까 염려되어 한 번 더 그대를 보고 외로운 심회를 풀려고 왔소."
하고 낭자의 손을 이끌어 금침 속으로 끌어 들여서 밤이 새도록 정회를 풀었다.
이 때 부친 백공(白公)이 아들을 과거차 서울로 보내고 도적을 살피려고 청려장을 짚고 담장 안을 돌아다니며 사방의 동정을 보다가 동별당에 이르니, 낭자의 방에서 문득 남자의 말소리가 은은히 들리니 백공이 가만히 듣다가 혼자 생각에
"며느리는 빙옥지심(氷玉之心)과 송죽지절(松竹之節)의 여인인데 어찌 외간 남자와 사통하여 음행한 짓을 할까. 그러나 세상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한 번 알아봐야겠다."
하고 가만히 사창 앞으로 다가서서 귀를 기울이고 엿들이니 이윽고 낭자가 낮은 음성으로,
"시아버지께서밖에 와 계신 듯하니 당신은 몸을 이불 속에 숨기세요."
하며 또 잠이 깬 듯한 아이를 달래면서,
"너희 아버지는 장원급제하여 영화롭게 돌아오신다."
하고 어루만지거늘 시아버지 백공이 크게 의심을 품고 침소로 돌아왔다. 이 때 낭자는 시아버지가 밖에서 엿듣는 기척을 미리 알았으므로 선군에게 말하기를,
"시아버지께서 창밖에 와서 엿보고 가셨으니 이미 낭군이 온 줄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낭군은 제게 연연하지 마시고 어서 서울에 올라가 성공 여부를 헤아리지 말고 과거를 보아 부모님이 바라시는 바를 저버리지 마시고 또 제게도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생각건대 낭군께서 저를 생각하여 여러 번 왕래하게 된다면 그 죄가 크니, 그것은 장부의 도리가 아니요, 또 부모님께서 그 사실을 아신다면 결단코 제가 화를 당할 것은 뻔하니 낭군은 전후 사리를 현명하게 헤아려서 속히 상경하십시오."
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선군이 숙영의 말을 옳게 여기고 곧 작별하고 다시 주막집 숙소로 달려갔다. 그 때까지 하인은 아직 잠을 깨지 않고 자고 있었다.
이튿날 날이 새자 다시 길을 떠나 겨우 오십 리를 가서 숙소를 정하고 달 밝은 객창에 홀로 적막히 앉아 있으니, 낭자의 모습이 눈 앞에 삼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천만가지로 고민하다가, 결국 울적한 정회를 금하지 못해서 또다시 표연히 집으로 돌아와 몰래 낭자의 방으로 들어가니 낭자가 놀라고 꾸짖어 말하기를,
"낭군은 제가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듣지 않고 오늘 밤에 또 돌아왔으니 웬일입니까? 이러다가 천금 귀체가 객중에서 병을 얻으면 어쩌시렵니까? 그렇게도 저를 못잊어 계속 이러실 바에는 제가 차라리 낭군의 숙소에 찾아가겠습니다."
하니 선군이,
"그대는 규중의 아녀자이거늘 어찌 감히 임의로 돌아 다니겠소."
하였다. 낭자가 화상을 낭군에게 주며,
"이 화상은 저의 모습이오니 가지고 길을 행하시다가 꺼내 보되 만일 빛이 변하거든 제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 줄로 아십시오."
하고 밤이 새기 전에 선군을 집에서 보내려고 하였다. 이 때 선군의 부친 백공은 어젯밤 며느리의 행실을 해괴하게 여기고 있던 차에 오늘 밤에도 동별당으로 가서 귀를 기울이고 엿들었더니, 또 남자와 수작하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백공이 생각하기를,
"이런 고약 망측스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내 집의 담이 높고, 상하 이목이 번다하여 외간 사람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데 수일을 두고 낭자의 방에서 남자의 소리가 나니 이는 필경 간특한 놈이 낭자와 짜고 간통하는게 분명하다."
하고 자기 처소로 돌아가서 탄식하기를,
"낭자같은 정숙한 며느리가 이런 간통의 흉죄를 범하니 실로 사람 마음의 옥석(玉石)은 분간키 어렵구나."
하였다. 이렇게 의심이 짙어져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야말고 보통 고민이 아니었다. 마침내 부인을 불러서 이 사연을 말하고,
"아직 그 해괴한 사실은 진가가 확실하지 않으나, 만일에 불미한 일이 있으면 이 일을 장차 어찌 했으면 좋겠소?"
하였다. 부인이 말하기를,
"그건 영감께서 잘못 들은 것일 겁니다. 우리 며느리의 행실은 평소 백옥같아 그런 행동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공연한 누명을 씌우지 마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백공이,
"나도 저의 일을 알기로 의아해 하고 있으니 며느리를 불러서 해문(解問)하여 그 진상을 알아 봅시다."
하고 낭자를 불러 내어,
"선군이 상경한 후로 집안이 적적해서 혹시 도적이나 들지 않을까 해서 후원을 두루 돌아다니며 살피다가 네 방 근처에 갔을 때, 방안에서 웬 남자의 음성이 은은히 들리기에 이상하여,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마는 설마 그럴 리가 있으랴고 내 귀를 의심했었다. 그 이튿날 또 가서 들으니 또 남자 음성이 낭자하니 이 아니 괴이하냐? 어디 한 번 사실대로 말해 봐라."
하였다. 낭자가 변색을 하여,
"밤이면 춘앵과 동추을 데리고 매월이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지냈지만 외간 남자가 어찌 제 방에 와서 이야기를 하였겠습니까? 저로서는 천만 뜻밖의 말씀입니다."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백공이 듣고 저으기 마음이 놓이나, 일이 하도 고이하여 매월을 즉시 불러서 묻기를,
"네가 이 즈음 아씨 방에 가서 자느냐?"
하니 매월이,
"요사이 소녀의 몸이 곤하여 낭자의 방에 가지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매월의 대답을 듣고 백공은 더욱 수상히 여겨 매월을 꾸짖기를,
"정말 그게 사실이냐? 요사이 괴상한 일이 있어서 아씨에게 물은 즉 밤으로는 너와 함께 자며 수작하였다는데, 너는 아씨 방에 가지 않았다 하니 두 사람의 말이 서로 같지 않구나. 이는 필시 아씨가 외인과 사통한 것이 분명하다. 너는 앞으로 아씨의 동정을 살펴서, 아씨 방에 왕래하는 놈을 잡아서 알리라."
하고 엄명을 내렸다. 매월이 명을 받고 아무리 주야로 살폈으나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없는 도적을 어찌 잡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공연히 매월에게 간계를 꾸미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결과가 되었다. 매월이 생각하길,
"선군이 낭자와 작배(作配)한 뒤로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으니 어찌 애달프지 아니한가. 이번 기회에 낭자를 간통죄로 몰아서 나의 해묵은 원한을 풀리라."
하고 결심하였다. 매월은 금은 수천냥을 훔쳐서 동류(同類)들을 모아 의논하여 말했다.
"금은 수천냥을 줄 것이니 누가 나를 위해서 묘계를 행해 주겠소?"
하고 꾀었다. 그 중에 이름이 돌이라는 힘깨나 쓰고 성정이 흉완하고 호방한 놈이 매월의 말을 듣고 재물에 혹하여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매월은 기뻐서 돌이를 이끌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내 다른 사정이 아니라, 이 댁의 선군 서방님이 나를 소첩으로 삼고 전에는 정을 두텁게 대하더니, 낭자를 본실로 데려온 후에는 팔년이 되도록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종년으로만 상대하니, 내 마음이 어찌 분하지 않으랴. 그래서 낭자를 음해해서 이 집에서 내쫓아 분풀이를 하려고 하니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잘 해라."
하였다. 매월은 이날 밤에 돌이를 데리고 동별당 문 밖에 와서,
"너는 여기 있거라. 그러면 내가 영감 처소에 가서 적당히 말하면, 영감이 격분하고서 네가 낭자의 간부(姦夫)인 줄 알고 잡으로 올 것이니, 너는 그때 쯤하여 영감이 보도록 낭자의 방에서 나오는 척하고 이 후원 문을 열고 나가되 부디 소홀히 하지 마라."
하였다. 그리고 매월은 영감한테로 가서,
"상공께서 저더러 동별당 동정을 잘 살피라는 분부를 받고 밤마다 잠을 안 자고 지켰더니 과연 어떤 놈이 낭자 방으로 몰래 들어가서 추잡한 희롱을 하고 있기에 제가 살짝 엿들으니 낭자가 그놈에게, '서방님이 오거든 죽여버리고 재물을 도적질해서 같이 도망쳐 살자.'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허겁지겁 달려와 대감께 아뢰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백공이 이 말을 듣고 노기가 대발하여 칼을 빼들고 후원으로 달려가자, 과연 어떤 놈이 낭자의 방에서 문을 열고 나와 뛰어서 담장을 넘어 도망쳐버렸다. 백공이 잡지 못하고 분기만 간직한 채 다시 처소로 돌아와서 밤을 앉아 새워 새벽 닭울음 소리가 들릴 때가 되니, 비복들을 불러서 좌우에 세우고 차례로 엄중히 문초하였다. 백공이,
"내 집의 담이 높아 외인이 임의로 출입할 수 없는데 낭자방에 밤마다 수상한 놈이 자유로이 출입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은 너희들 중에 있으니 숨김 없이 고하라."
하였다. 비복들이 묵묵부답 하자 급기야는 낭자를 잡아 오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매월이 제일 먼저 올커니 생각하고 동별당으로 뛰어가 문을 열고 소리를 크게 지르며,
"아씨는 무슨 잠을 이렇게 태평하게 자고 있어요. 지금 상공께서 아씨를 잡아오라 하시니 빨리 가시지요."
하였다. 낭자가 깜짝 놀라면서,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집안이 이리 요란스러우냐?"
하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비복들이 문 밖에 가득하였다. 낭자가 다시 묻기를,
"너희들 무슨 일이냐?"
하니 한 노복이 대답하기를,
"아씨는 어떤 놈과 간통하다가 공연히 애매한 우리들만 경을 치게 합니까? 죄 없는 우리들을 더 이상 경치게 하지 마시고 어서 가서 바른대로 말하시오."
하고 구박이 자심하였다. 낭자는 천만 몽배 밖의 모욕을 종놈들에게 당하고 넋이 빠진 듯 간담이 서늘해졌다. 어리둥절해 하는 낭자에게 재촉이 성화같았다. 낭자가 곧 상공 앞에 나아가 엎드려,
"제가 무슨 죄가 있기에 밤중에 이런 꾸중으로 부르셨습니까?"
하고 여쭈였다. 그러자 백공이 크게 노하여,
"수일 전부터 너에게 수상한 일이 있기에 너에게 물었더니 네 말이 선군이 떠난 후 적막하여 매월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고 하길래 믿겨지지가 않아서 매월을 불러서 힐문하니까 매월이는 요사이 일체 네 방에 가지 않았다고 하니 이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는 일일 것같아 여러 날을 잘 살펴온즉 분명 어떤 놈이 네 방에 출입하는 것이 틀림 없거늘 네 무슨 얼굴을 들고 변명하려 드느냐?"
하였다. 그러자 낭자가 울면서 변명하니 백공이 크게 꾸짖어 말했다.
"닥쳐라! 내 귀로 직접 듣고 내 눈으로 직접 본 일인데, 네가 끝끝내 나를 속이려고 하니 어찌 통해(痛駭)치 아니하랴. 양반의 집에 이런 해괴한 일이 있기는 드문 법, 실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네가 상통한 놈의 성명을 빨리 대라."
하는 시아버지의 호령이 서릿발 같았다. 그러나 낭자는 오히려 낭낭하게,
"아무리 시부모님 간택으로 육례를 이루지 못한 며느리라 할지라도 어찌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억울한 누명을 발명(發明)하기도 창피하오나, 아버님께서 자세히 조사해 보십시오. 이 몸이 지금 비록 인간으로 있사오나, 저의 빙옥(氷玉)같은 정절(貞節)로 이런 더러운 말씀을 듣겠습니까? 이런 더러운 말씀을 들으면서도 영천수(潁川水)가 멀어서 귀를 씻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다만 죽어 모르고자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시아버지 백공이 비복을 호령하여 낭자를 결박하라고 명하니, 비복들이 일시에 달려들어서, 머리를 산발하여 층계 아래 꿇어 앉혔다. 낭자의 이런 몰골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가련하였다. 백공이 크게 노하여,
"네 죄상은 만 번 죽여도 아깝지 않으니, 너와 사통한 놈의 성명을 빨리 대라."
하고 다그치며 매질을 하니 낭자의 백옥같은 귀 밑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요, 옥 같이 흰 살결은 유혈이 낭자하였다. 낭자는 악형의 고통을 참으면서 정신을 차리고,
"저번에 낭군이 길 떠난 밤과 이튿날 밤 두 번, 겨우 삼십리쯤 가다가 숙소를 정하였으나, 저를 잊지 못해 밤중에 집으로 몰래 돌아왔기에, 제가 한사코 잘 말해서 도로 보낸 일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으나 제 어린 소견으로는 시부모님께 꾸중을 들을까 겁을 내어 지금까지 고하지 않고 있었더니, 조물(造物)이 그것을 밉게 여기시고 귀신이 그것을 시기해서, 이런 씻지 못할 누명을 입은 듯하옵니다. 지금에 와서는 어찌 해명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밝은 명천은 소소히 살펴 아시오니 아버님께서는 그런 사실과 저의 정상을 살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백공은 점점 더 노하여 매를 든 비복을 독려해서 헤아려가며 혹독한 매질을 가하였다. 낭자가 하는 수 없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아아, 공명한 창천이여! 무죄한 이 내 마음을 굽어 살피소서. 오월비상지원(五月飛霜之怨)과 십년불우지원(十年不雨之怨)을 뉘라서 풀어 주겠습니까?"
하고 호소하면서 엎어져서 기절하고 말았다. 시어머니가 그 며느리의 참상을 보고 울면서 영감에게,
"옛말에 이르기를 엎지른 물은 그릇에 다시 담지 못한다 하오니, 영감은 자세히 모르시고 백옥같이 티 없는 정절한 며느리를 억울하게 음행(淫行)의 죄로 포박(捕迫)하시니, 며느리의 무죄가 밝혀졌을 때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없겠습니까?"
하고 뜰 아래로 뛰어 내려가서 낭자를 안고 대성통곡(大聲痛哭)하였다.
"너의 송백같은 절개는 내가 잘 알고 있다. 오늘 이런 변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니 어찌 지극히 통탄치 않으랴."
하니 낭자가 말하기를,
"옛말에도 음행의 소문은 씻기 어렵다 하오니, 동해의 물로도 씻지 못할 이런 누명을 쓰고 제가 어찌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하고 통곡하였다. 시어머니 정씨가 낭자를 가엾게 여기고 만단으로 위로하고 타일렀으나, 낭자는 끝내 듣지 않고 문득 옥잠(玉簪)을 빼어 들고 하늘을 향하여 절하고 빌었다.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황천(皇天)은 굽어 살피소서. 제가 만일 외간 남자와 간통한 일이 있거든, 이 옥잠이 제 가슴에 박히게 하시고, 만일 애매한 누명이거든 이 옥잠이 저 섬돌에 박히도록 하십시오."
하고 옥비녀를 공중으로 높이 던지고 땅에 엎드렸다. 이윽고 그 옥잠이 떨어지면서 섬돌에 깊이 박혔다. 그제서야 하늘이 심판한 기적을 보고 대번에 상하 모든 이가 대경실색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낭자의 원통하고 억울함을 알게 되었다. 백공이 뜰로 내려가서 낭자의 손을 잡고 빌어 말했다.
"늙으니 주착이어서 착한 며느리의 정절을 모르고 망령된 일을 저질렀으니, 내 허물은 만번 죽어도 죄를 씻지 못하리라. 바라건대 너는 나의 용렬함을 용서하고 안심하라."
낭자는 슬피 통곡하면서,
"제가 이런 누명을 씻고 세상에 머물러 쓸 데 없사오니 다만 빨리 죽어서 아황여영(娥皇女英)의 자취를 좇으려 합니다."
하였다. 백공이 위로하여 말했다.
"자고로 현인군자도 혹 참소를 당하며, 숙녀현부도 혹 누명을 얻는 법이다. 너도 일시의 액운을 만났던 것으로 알아 너무 고집하지 말고 노부(老父)의 부끄러워함을 돌이켜 생각하라."
하였다. 시어머니 정씨도 낭자를 부축해서 동별당으로 데리고 가 위로하였다. 낭자는 눈물을 흘리며 한숨만 짓다가 시어머니 정씨에게,
"저 같은 계집이라도, 악명이 세상에 퍼졌는데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낭군이 돌아오면 서로 대할 낯이 없습니다. 다만 죽음으로써 세상을 잊고자 합니다."
하고 진주같은 눈물이 옷깃을 적시거늘 시어머니 정씨가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네가 만일 죽는다면, 선군도 결단코 너를 따라 자결할 것이니 이런 답답한 일이 어디 또 있겠니."
하고 탄식하며 침소로 돌아갔다. 이 때 춘앵이 모친의 슬퍼하는 형상을 보고 울면서,
"어머니, 죽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거든 원통한 사정이나 알려드리고 죽든지 살든지 하세요. 만일 이제 어머니가 죽으면 동춘이는 어떻게 하며 저는 누구를 믿고 살라고 그러세요?"
하고 모친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세요."
하고 들어갔다. 낭자는 마지 못하여 방으로 들어가서 춘앵을 옆에 앉히고 동춘에게 젖을 먹인 뒤에 채복(彩服)을 꺼내서 입었다. 낭자는 슬퍼하면서 춘앵에게,
"춘앵아, 나는 죽으련다. 네 아버지가 천리 밖에 있어서 내가 죽는 줄도 모르니 죽는 내 마음도 의지할 곳이 없구나. 춘앵아, 이 백학선(白鶴扇)은 천하의 보배다. 추울 때 부치면 더운 기운이 나고 더울 때 부치면 찬 바람이난다. 잘 간직하였다가, 네 동생 동춘이 자라거든 주어라. 아아 슬프다. 흥진비래(興盡悲來)요,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세상의 상사(常事)라 하지만, 이 어미의 팔자가 기험하여 천만 뜻밖에 누명을 쓰고 너의 부친을 다시 보지 못하고 황천객이 되니, 어찌 편하게 눈을 감겠느냐. 하물며 너희 남매를 두고 어찌 죽겠느냐. 가련한 춘앵아, 나 죽은 후에 너무 슬퍼하지 말고, 동생 동춘이를 보호하여 잘 있거라."
하고 유언하는 낭자는 눈물이 비오듯하였다. 춘앵이 모친을 붙들고,
"어머니, 우지 마세요. 어머니가 우는 소리에 제 간장이 끊어지는 듯하니 제발 우지 마세요."
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다가 기진맥진하여 잠이 들어버렸다. 낭자는 지극히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분함이 가슴에 가득히 맺혀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죽어서 누명을 씻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또 애들이 깨어나면 분명히 죽지 못하게 말리리라 생각하여 가만히 동춘을 어루만지며,
"불쌍한 춘앵 남매야. 나를 그리워하여 너희들은 어찌 살랴? 가련타 춘앵아. 너희 남매를 두고 어이 가리. 애달프다. 이제 나에게 십대왕(十大王)이나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소서."
하고
"춘앵아, 동춘아, 잘 있거라."
하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원앙침을 돋우 베고 섬섬옥수로 비수를 들어 가슴을 찔러 죽었다. 그러자 문득 태양도 빛을 잃고 천지가 어두워지고, 천둥소리가 진동하였다. 춘앵이 깜짝 놀라서 깨어 보니, 모친이 가슴에 칼을 꽂고 누워 있었다. 소스라쳐 놀라 모친의 가슴에 꽃힌 칼을 잡아 빼려고 하였다. 그러나 칼이 빠지지 않으므로 춘앵이 모친의 얼굴을 부벼대면서,
"아이고 어머니, 일어나오. 이것이 웬일입니까. 불쌍한 우리 어머니, 우리 남매를 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 남매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란 말입니까. 어린 동춘이가 어머니를 찾고 울면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어머니가 차마 어찌 이런 일을 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고 호천곡지(號天哭地)하며 망극애통해 하니, 그 비참한 정상에는 철석같은 간장이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고, 토목심정(土木心情)이라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공 부부와 비복들이 놀라서 들어와 보니, 낭자가 가슴에 꽂고 누었거늘 창황망조하여 칼을 잡아 빼려고 하였으나 끝끝내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쩌지를 못하고 모두들 곡소리만 하였다. 이 때 철 모르는 동춘은 모친이 죽은 줄도 모르고 젖만 먹으려고 죽은 모친의 몸을 흔들며 울기만 하였다. 춘앵이 달래며 밥을 주어도 동춘은 먹지 않고 젖만 먹으려 하거늘 춘앵이 동춘을 안고 울면서,
"동춘아, 우리 남매도 차라리 어머니를 따라 죽어 지하에 가자."
하고 뒹굴며 통곡하는 정상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삼 사일이 지난 후에 시부모가 서로 의논하기를,
"며느리가 이렇게 참혹하게 자결하였으니, 선군이 과거를 보고 돌아와서 며느리의 가슴에 칼이 꽂힌 것을 보면, 우리가 모해하여 죽인 줄로 오해하고 저도 또한 죽으려 할 것이니, 선군이 오기 전에 낭자의 시체를 빨리 장사지내는 것이 좋을까 하오."
하고, 며느리의 방에 들어가서 시체의 염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체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서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서 움직여 보려고 무수히 애를 썼으나 역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결국 백공은 이것이 무슨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초조하게 번민할 따름이었다.
이 즈음에 선군은 낭자의 충고로 겨우 마음을 돌려 먹고 상경하여 여관을 정하고 과거날을 기다렸다. 그날이 되자 팔도에서 선비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 선군이 시지(試紙)를 옆에 기고 춘당대(春塘臺)에 가서 현제판(懸題板)을 바라보니 '선제편배<?>'라 되어 있었다. 선군이 한 번 보더니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글을 지어서 맨 먼저 상감께 올렸다. 상감께서 무수한 글을 보시다가 선군의 글을 보시고는 칭찬하시면서,
"훌륭하도다, 이 사람의 글은 그야말로 이태백의 문체요, 조맹부의 필법이도다."
하시고 글의 한 자 한 자 비점(批點)과 관주(貫珠)를 주시고 장원을 시킨 후에 성명의 비봉(秘封)을 떼어 보니, 경상도 안동에 사는 백선군으로 나타났다. 상감이 선군을 불러서 승정원 주서의 벼슬을 내렸다. 선군은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승정원에 입작(入爵)하였다. 이 때 이 기쁜 소식을 시골에 전하는 것은 물론 낭자와 이별한 지 오래되어 회포가 간절하였다. 선군은 노비를 시켜 노부모와 낭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부친이 황급히 뜯어 보니,
"소자 다행히 천은을 입어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승정원 주서를 하여 방금 입작(入爵)하였사오니, 감축무지(感祝無地)하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뵈올 일자는 금월 보름께나 될 것이오니 그리 아옵소서."
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미 죽은 낭자에게 온 편지를 시어머니 정씨가 받아들고 울면서,
"춘앵아, 동춘아, 이 편지는 네 아비가 네 어미에게 보낸 편지니 잘 간수하여라."
하고 방성통곡하며 주었다. 춘앵이 편지를 가지고 모친 빈소에 들어가서 모친 시신을 흔들면서 편지를 펴 들고 울었다.
"어머니, 어서 일어나세요. 아버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아버님이 장원급제하여 승정원 주서가 되었다 하는데 어머니는 왜 일어나서 기뻐하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아버님 소식을 몰라서 주야로 걱정하시더니 오늘 이 편지가 왔는데 왜 반겨주지 않습니까. 나는 아직 글을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 읽어 드리지도 못하니 답답하옵니다."
하고 울던 춘앵은, 할머니를 끌며,
"할머니 이 편지를 어머니 앞에서 읽어 드리면, 어머니 혼령이라도 감동할 것 같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조모 정씨가 마지 못하여 낭자의 빈소에 가서 편지를 읽었다.
"주서(主書) 백선군은 한 장 글월을 낭자에게 부치나니, 그 사이에 두 분 부모님 모시고 평안하며 춘앵 동춘 남매도 잘 있는지요? 나는 다행히 용문(龍門)에 올라 벼슬길에 들었으니 천은이 망극하오. 다만 그대와 이별하고 천리밖에 있으매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오. 그대의 용모가 눈에 암암하고 그대 음성이 귀에 쟁쟁하오. 달빛이 뜰에 가득하고 두견새가 슬피 울 적에 문 밖에 나가 고향을 바라보니, 운산(雲山)은 만중(萬重)이요, 녹수(綠水)는 천리로다. 새벽달 찬바람에 외기러기 울고 갈 제 반가운 낭자의 소식을 기다렸더니, 창망한 구름밖에 소슬한 풍경 뿐이로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귀뚜라미 소리가 산란하니 운우양대(雲雨陽臺)에 초목들 바람소리도 쓸쓸하구나. 아아, 슬프다. 흥진비래는 고금상사라, 낭자가 준 화상이 요새 날로 변색하니 필경 무슨 연고가 있을 것 같아서 식불감미(食不甘味)하고 침불안석(寢不安席)하니, 일각이 삼추(三秋)같이나, 벼슬에 매인 몸이라 뜻대로 곧 달려가지 못하오. 비장방(費長房)의 선죽장(仙竹杖)을 얻었으면, 조석으로 왕래 하련마는, 그 또한 극히 어려운 일이라 어쩔 수 없소. 바라노니 낭자도 독수공방을 설워 말고 기다리면 머지 않아서 서로 만나 반가운 정회를 위로할 것이오. 녹양춘풍에 뜬 해는 어디로 가느뇨. 오직 내 몸에 날개 없어서 빨리 못 가는 것이 한스럽소. 할 말은 무궁하나 편지 한 통에 다 쓸 수 없어 이만 줄이오."
정씨가 편지를 다 읽고서 손주딸 춘앵을 어루만지며 통곡하여 하는 말이,
"슬프다. 네 어미를 잃고 어찌 살꼬. 죽은 네 어미의 영혼이라도 너를 애처롭게 여길 것이다."
하였다. 춘앵이 울면서,
"아이고 어머니, 아버님 편지 사연을 들으시고도 왜 아무 말도 없으십니까? 우리 남매는 어머니 없이는 살기 싫사오니, 어서 어머니 계신 곳으로 데려가소서."
하고 슬퍼했다.
이 때 백공 부부는 머지 않아 선군이 올 것을 생각하고 상의하기를,
"선군이 내려오면 필경 죽은 아내를 따라서 죽으려 할 테니, 장차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탄식했다. 이 때 선군은 시종하는 노복(奴僕)이 백공 부부의 기색을 알아채고 여쭙기를,
"전번에 소상공(小相公)을 모시고 용궁으로 가실 때에, 풍산땅에 다다르매 주루화각(朱樓畵閣)에 채운(彩雲)이 영롱하고 연못에 연꽃이 만발하고, 동산에 모란꽃이 피어 춘색을 자랑하는 곳에서, 어떤 미인이 백학(白鶴)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리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임진사(林進士)댁의 규수라 하였습니다. 소상공께서 그 미인을 한 번 바라보시고 흠모하고 배회 주저 하시다가 돌아오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으로는 그 임진사댁의 규수와 성혼하시면 소상공이 기뻐하시고 필연코 숙영낭자를 잊으시지 않을까 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백공이 크게 기뻐하고,
"네 말이 옳다. 임진사는 나와 친한 사이니까 내 말을 괄시하지 않을 것이고, 선군이 이미 입신양명(立身揚名)하였으니 그 댁에 구혼하기도 쉽게 되었다."
하고, 곧 백공은 길을 떠나 임진사 집을 찾아가니 임진사가 반갑게 맞았다. 서로 인사가 끝난 뒤에 임진사는 백공의 아들 선군이 득의(得意)한 경사를 치하하고, 주과를 내어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하였다. 임진사가 백공에게,
"백형이 이처럼 누지(陋地)에 왕림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니 백공이,
"임형의 말이 잘못이요. 친구끼리의 심방은 예삿일인데 임형의 집을 누지라고 일컬으시니 이제 옴이 감당키 어렵구료."
하고 서로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문득 백공이 임진사에게,
"사실 내가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임형은 내 청을 들어 주겠소?"
하자 임진사가,
"그야 들을 만한 말이면 들을테니 말해 보시오."
하였다. 백공이,
"실은 다름 아니라 우리 자식 선군이 숙영낭자와 인연을 맺어서 금슬지락(琴瑟之樂)이 극진하여 자식 남매를 두었는데, 선군이 과거 보러 상경한 사이에 낭자가 홀연히 병을 얻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불쌍한 마음이 측량 없으나 선군이 집에 돌아와서 낭자가 죽은 줄 알면 반드시 병이 날 것 같기에 급히 규수를 널리 구하는 중이오. 그러던 중 듣자니 귀댁에 어진 규수가 있다 하니, 소제(小弟)의 가문이 비루함을 생각지 못하고 감히 귀댁에 구혼하고자 하니 임형이 이 청을 물리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오."
하고 간청하였다. 임진사가 백공의 말을 듣고 한동안 묵묵히 생각한 끝에,
"천한 딸이 있으나, 영식(令息)의 짝이 될 만하지 못하고 또 지난해 칠월 보름날에 우연히 영식과 숙영낭자를 보았을 때, 낭자의 자태가 마치 월궁선녀같이 아름다운 숙녀였으며, 비록 소제가 백형의 뜻대로 허혼하더라도 영식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요, 그런 경우에 영식의 신세가 가련하게 될 것이니, 이 말씀은 천만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오."
하였다. 백공이 그럴 리 없다고 굳이 재차 청하였다. 임진사가 마지 못하여 재삼 당부하고 허락하자, 백공이 기뻐하고,
"그럼 이달 보름날에 선군이 집에 돌아올 적에, 귀댁 문전을 지나게 될 것이니 그날로 성례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 임진사와 하직하였다. 백공은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이 사연을 전하고 곧 예물을 갖추어서 납채하고, 부인과 의논하기를,
"그건 잘 되었지만, 숙영낭자가 죽은 줄 모르고 내려올 것이니, 집에 와서 낭자가 죽은 곡절을 물으면 무어라 대답하겠소?"
하였다. 백공이,
"그 일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으니 여차여차 말함이 좋겠소."
하고 서로 약속하고, 선군이 내려올 날을 기다려서 풍산촌의 임진사 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각설. 이 때 백선군은 벼슬 후의 근친의 말미를 얻어서 조정을 하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올 제, 어사복두(御賜按頭)에 청사관대(靑紗冠帶)를 입고, 야대(也帶)를 띠고, 바른 손에 옥홀(玉笏)을 잡고, 어사화(御史花)를 비스듬히 꽂고, 재인창부(才人倡夫)와 이원풍악(梨園風樂)을 벌여 세우고, 청홍개(靑紅蓋)를 앞세우고, 금안준마(金鞍駿馬)에 전후 추종이 옹위하여 대로상을 흥겹게 행진해 왔다. 길가에 모여 와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백선군의 영광을 칭송하며 부러워하여 마지 않았다. 이렇게 행차하여 사나흘이 지나니, 마음이 자연 서글퍼져 백선군이 잠깐 주점에서 쉬면서 문득 졸고 있을 때 비몽사몽간에 숙영낭자가 전신에 피를 흘리고 완연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선군의 옆에 앉더니 슬프게 울면서,
"낭군이 입신양명하여 영화롭게 돌아오시니 기쁘기 측량 없사오나, 저는 시운이 불길하여 이 세상을 버리고 황천객이 되었습니다. 전에 낭군의 편지 사연을 들으니 낭군이 저에게 향한 마음이 간절하시나, 이것 역시 저의 연분이 천박하여 벌써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구천의 혼백이라도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저의 원통한 사연을 아무쪼록 깨끗이 풀어 주시기를 낭군에게 부탁합니다. 낭군은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저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 주시면, 죽은 혼백이라도 깨끗한 귀신이 될까 합니다."
하고 낭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선군이 놀라서 꿈을 깨어보니 전신에 식은 땀이 축축하고 심신이 떨려 진정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곡절을 헤아리지 못하여 인마를 재촉하여 주야로 길을 달려서 여러 날 만에 풍산 마을에 이르러서 숙소를 정하였으나, 식음을 전폐하고 앉아서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 밤중에 문득 하인이 와서,
"대상공(大相公)께서 오셨습니다."
하고 알렸다. 선군이 즉시 밖에 나가 부친께 문안을 드리고 방으로 뫼시고 들어가서 가내 안부를 여쭈었다. 부친은 주저하다가 혼솔(渾率)이 무사하다고 거짓 알리고, 선군이 장원하여 높은 벼슬을 하게 된 사연을 물으면서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이윽고 선군에게 은근한 말로,
"장부가 현달(顯達)하면, 양처(兩妻)를 두는 것이 고금의 상례로 되어 있다. 들으니 이 마을의 임진사의 딸이 매우 현숙하므로, 내가 이미 구혼하여 임진사에게 허락 받고 납채하였으니, 이왕 이곳에 온 터에 내일 아주 성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아들에게 권하였다. 선군은 숙영낭자가 현몽하여 불행을 호소한 뒤로 반신반의하고 마음을 진정치 못하던 차에 부친의 이런 말을 듣고 추측하되,
"부인이 죽은 것이 분명하구나. 그래서 나를 속이고 임낭자를 취하게 하여 나를 위로해 주시려는 게로구나."
하고 부친께,
"아버님 말씀은 지당하오나, 제 마음은 급하지 않사오니 후일에 정혼하여도 늦지 않을까 합니다. 그 말씀은 지금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였다. 부친은 아들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다시 입밖에 내지 못하고 밤을 지냈다. 첫닭이 울자마자 선군은 인마를 재촉하여 안동으로 급행하였다. 이 때 임진사가 선군이 마을에 가까이 왔음을 알고 선군의 숙소로 찾아 오다가, 도중에서 이미 선군의 행차를 만나서 장원급제한 것에 대해 치하하고 몇 마디 주고 받고 헤어졌다. 그 뒤에 친구 백공을 만나니 선군은 만나서 얘기한 사연을 말하며,
"일이 여차여차하니 잠깐 기다리시오."
하고 아들의 뒤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때에 선군이 서둘러 집으로 향하니 하인들이 그 곡절을 모르고 의아해하였다.
선군이 본집에 와서 정부인을 뵙고 그간의 안부를 여쭙고 낭자의 거처를 물었다. 모친은 아들의 금의환향을 기뻐할 마음조차 없이 당장 아들이 묻는 말에 말문이 막혀 주저하였다. 선군이 더욱 의아스럽게 여기고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 천만 뜻밖에 낭자는 가슴에 칼을 꽂은 채 누워 있지 않은가. 선군은 가슴이 막혀서 울지도 못하고 땅에 곤두박질하여 넘어졌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춘앵이 동생 동춘을 안고서 내달아서 부친의 옷자락을 잡고,
"아버지, 아버지는 왜 이제야 오십니까? 어머니는 벌써 죽은 지 오래지만 염습도 못하고 지금 저대로 있으니 차마 서러워서 못살겠습니다."
하고 부친을 끌고 낭자의 빈소로 들어가,
"어머니, 그만 일어나세요. 아버지가 지금 오셨어요. 그렇게도 주야로 그리워 하시더니 왜 꼼짝도 않고 무심하게 누워만 계세요?"
하고 슬피 울었다. 선군이 비로소 참지를 못하고 한바탕 통곡하다가, 급히 부모 앞으로 나와서 숙영낭자가 참혹하게 죽은 곡절을 물었다. 백공이 오열하면서,
"네가 상경한지 오륙일 지나가, 하루는 낭자의 기척이 없기에 우리가 이상히 여기고 제 방에 가보니 저런 처참한 모양으로 누워 있어 깜짝 놀라서 그 곡절을 알려고 했으나 아직도 자세한 곡절은 모르겠구나. 다만 추측건대 필시 어떤 놈이 네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밤중에 침입해서 겁탈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친 것인가 하여 염습을 하려고 칼을 빼려고 해도, 어느 누구도 능히 빼지를 못하고, 시체를 움직여 염습하려고 해도 움직이지를 않아서 그대로 두고 너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런 일을 네가 알면 놀라 필경 병이 날까 하는 염려에서 알리지 않았다. 미리 임진사의 딸과 성혼하려고 한 것은 네가 낭자의 죽음을 알지라도 숙녀를 얻어서 새 정을 붙이면 마음이 위로될까 생각했던 것이니, 너도 기왕 당한 불행을 너무 상심하지 말고 어서 염습하여 장례 지낼 생각해라."
하였다. 선군이 이 말을 듣고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잠히 있다가 다시 낭자의 빈소로 들어가 대성통곡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노해서 집안의 모든 노비를 일시에 결박하여 뜰에 꿇어앉히고 보니, 그 중에 매월이도 끼어 있었다. 선군의 소매를 걷고 빈소로 들어가서 이불을 벗기고 보니, 낭자의 용모와 전신이 완연히 산 사람 같고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선군이 부축하여 올리고,
"이제 내가 왔으니, 가슴에 박힌 칼이 빠지면 그 칼로 원수를 갚아 낭자의 원혼을 위로하겠다."
하고 칼을 빼니, 그 칼이 가볍게 쑥 빠졌다. 그와 동시에 그 구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나오며,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 세 번 울고 날아갔다. 그 뒤에 또 파랑새가 한 마리 나오며,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 세 번 울고 날아갔다. 그제서야 선군이 매월의 소행인 줄 알고, 분격하여 당에 나와 형구를 갖춰 놓고 모든 비복을 차례로 장문(杖問)하였다. 그러나 죄가 없는 비복이야 죽을망정 무슨 말로 승복할 수가 있으랴. 이에 매월을 끌어내다가 매 때려 문초하였으나 간악한 매월은 좀처럼 제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가 백대에 이르자 철석같은 몸인들 어찌 견뎌내랴. 살이 터지고 유혈이 낭자하였다. 모진 매월도 하는 수 없이 개개 승복하여 울면서,
"상공께서 숙영낭자가 들어온 후로 저는 본체도 하지 않기에 질투심이 일어나던 차, 때를 타서 감히 간계로 낭자에게 누명을 씌울려고 했습니다. 같이 공모한 자는 돌이옵니다."
하고 실토하였다. 선군이 크게 진노하여 돌이를 또 문초하니, 매월의 뇌물을 받고 매월이가 시키는 대로 행한 죄 밖에는 다른 죄가 없노라고 자백하였다. 선군이 크게 노하고 칼을 들고 뜰로 내려와서 매월의 목을 베고,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어 낭자의 시체 앞에 놓고 두어 줄 제문(祭文)을 읽었다.
"성인